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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RT STORY

거울

계용묵 · 약 7분 · 3,482자

❧

거울

상

문혜는 아침 학교로 떠날 때마다 꽃분이가 근심이었다. 인제 열네 살이니 그까짓 게 무어 칠칠히 일은 하랴만 그래도 나이 봐선 못 하는 일이 없이 제법 하는 편인데도 어머니의 비위에는 틀렸다. 가다가 실수는 누구에게도 있는 일, 그런 걸 탓 잡자면 아니 잡힐 사람이 없을 것이다. 장작을 패고 숯불을 지피고 쌀을 일어 놓으면 그적에야 어머니는 부엌으로 내려와 솥에 쌀을 안치고 다시 들어갔다가 밥이 다 잦아야 한 번 나와서 밥을 푸는 일뿐 이었고 상을 물리면 그 뒤치다꺼리 까지도 도맡는 게 꽃분이의 역할이다.

아니 아침 저녁의 식사 때문이 아니라 배급을 타오느니 찬거리를 사오느니 하는 잔심부름에다 빨래까지 겸하여야 하는 것이므로 날이면 날마다 잠시나 마 밑 붙일 짬이 없이 서서 돌아가며 손을 놀려야 하는 것이니 일을 적게 하는 데서보다 많이 하는 데 그 실수가 많이 따르게 될 것은 빠안한 일이 다. 그것도 후에는 주의를 하라고 약간 욕으로 이르는 정도라면 혹 몰라도, 지독한 욕에다 손까지 대어서 하루도 몇 번씩 꽃분이의 눈물을 보고야마는 성질이니 꽃분이의 이러한 정경을 목도할 때마다 문혜는 혼자 안타까웠다.

보다 못해.

“아이 어머니 너무해요. 그만두세요.”

하면 그적엔 욕이 자기에게로 건너올 뿐 아니라 한층 더 서슬이 푸르러 꽃분이에게로 가는 욕이 좀더 심해짐으로 이즘은 어머니가 욕을 하거나 말 거나 매를 치거나 말거나, 알은 체도 아니 하고 그대로 두고 만다. 아무리 지독한 욕이 나와도 잠자코 있는 편이 도리어 꽃분이를 위함이 되어지는 것 이기 때문이다.

문혜의 이러한 내심을 꽃분이도 모를 리 없다. 욕을 먹을 때마다 마음으 로 동정을 하여 주고 아연히 여겨 주는 문혜가 고맙기 짝이 없었다. 그리하 여 문혜가 옆에 앉아 있어야 어쩐지 마음이 든든한 것 같고 그렇게 서럽지 도 않은 것 같아, 문혜가 늘 자기와 같이 집에 있기를 바랐으나 문혜는 날 마다 아침이면 학교로 가야 했다. 그러므로 꽃분이에게는 문혜가 아침 학교 로 떠날 때처럼 안타까운 일이 없었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올 때처럼 반가 운 일이 없었다. 마나님의 그 모진 욕에 차마 견디기 어려울 때는 그까짓 죽어라도 버리라는 생각이 문득 들다가도 그러면 문혜의 그 자기를 위한 따 뜻한 정은 영원히 받아 보지 못하게 될 것이 아닌가 하면 금시 문혜가 그리 워서 학교에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모든 것을 참아 오는 것이었다.

지금도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던 꽃분이는 책가방을 들고 마루로 나 오는 문혜의 인기척을 엿듣고 금시에 날이 어두워지는 듯한 적막에 문을 방 싯이 밀고 애처롭게 갸웃이 마루 쪽을 내다보았다.

이러한 꽃분이의 마음을 문혜 또한 모르진 않는다. 그러지 않아도 꽃분이 를 집에 혼자 두고 학교로 가는 것이 갈 때마다의 근심인데 이렇게 자기를 떨어지기 싫어 어머니가 보면 일을 아니 하고 넘석거린다고 욕을 먹을 줄 번연히 알면서도 자기를 가까이 하려는 꽃분이의 그 아연한 마음을 헤아려 볼 때는 정말 측은한 생각에 눈시울이 찌릿거렸다. 그러나 어머니는 듣는 데 서 꽃분이에게 무슨 위로의 말을 주는 수는 없다.

“어머니 저 학교에 다녀오겠어요.”

하고는 언제나같이 꽃분이에게는 눈짓으로만 다녀온다는 뜻을 보이고 또 각또각 대문 밖으로 나갔다.

하

“뭐냐!”

마나님은 그릇 부딪치는 소리를 들었다.

“아네요.”

“아니라니! 무에 쟁강 했는데?”

“아네요.”

“아니가 다 뭐냐!”

터르릉 하고 안방 문 밀리는 소리가 난다. 마나님이 달리어 나오는 눈치 다.

책상을 훔치려고 거울을 옮겨 놓다가 그만 꽃병에 부딪쳐 쨍 하고 났던 소리다. 실수한 것이 없다.

그러나 달려 나오는 마나님은 무섭다. 실수는 없는데도 무얼 깬 게 아니 냐고 바로 말을 하라고 자기 비위에 만족할 때까지 따집고 쥐어박고 할 건 늘 지나 보는 일이라, 빠안하다.

오늘은 웬일인지 마나님이 종일을 낮잠으로 참견이 없었으므로 요행 아무 일도 없이 지나게 되는가 보다 알았는데 문혜가 돌아올 시간이 되어 방이 너무 어지럽기에 말짱히 좀 훔쳐 준다고 들어갔던 것이 그만 또 이렇게 걸 려들게 되었던 것이다.

‘빌어먹을 유리 부딪치는 소리가 왜 그리 쨍 할까?“ 꽃분이는 거울이 꽃병에 부딪쳐 내는 그 쨍 하는 소리를 야속스럽게 여기 며 거울을 채 놓지도 못하고 손에 든 채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문이 밀린다.

있는 힘을 다하여 미는 듯한 그 문소리도 놀라웠거니와 미간의 그 주름이 세 줄로 꼿꼿이 내려뻗히고, 한껏 독을 몰아넣은 듯한 눈초리를 세모지게 찡그린 마나님의 얼굴과 부딪칠 때 꽃분이는 머리끝이 쭈뼛하고 올려뻗히며 소름이 쭉 전신을 엄습해왔다. 그 순간 꽃분이는 알 수 없는 공포에 저도 모르게 걸음이 뒤로 물러가다가 비칠 하고 몸의 균형을 잃었다. 걸레를 담 아 들여다 놓은 물대야에 발뒤꿈치가 걸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다리보다 상 반신이 먼저 뒤로 쏠리는 바람에 몸의 진정을 얻으려고 비칠비칠 발자국을 옮겨놓다가 그만 대야를 밟게 되어 더욱이 걸음의 균형을 잃게 된 꽃분이는 몸의 진정을 위하여 애를 쓰다가 손에 들었던 거울까지 떨어뜨렸다. 대야 가장자리에 허리를 맞은 거울은 쨍강하고 두 쪽으로 짝 갈라졌다.

“이년, 이년 이것 봐!”

문도 채 밀지 못하고 모로 비비적거리며 들어온 마나님은 다짜고짜 꽃분 이의 볼따구니를 쥐어박고 끌채를 감아쥐었다.

마나님이 건너오지 않았으면 깨질 거울이 아니었으나 어쨌든 마나님의 눈 앞에서 일을 저질렀으니 이건 변명할 도리가 없다. 하는 대로 욕을 먹고 때 리는 대로 맞을 밖에 없었다.

“글쎄 이년은 일을 한다는 게 일을 저지르는 일이것다! 거울 한 개에 이 천 원두 넘는다드라. 이년아!”

한참 끌채를 흔들다 말고, “울어? 무얼 잘 했다구 울어? 제 꼴에 거울은 무슨 거울, 들여다봐야 두 꺼비 상이지. 계집년이 나이는 먹어 간다구 그 잘난 상판을 닦느라구 비싼 밥 멕여 가면서 속을 썩이는 네년이 잘못이야, 이년아!”

이번엔 볼따구니를 또 쥐어박고, “이년아! 일 년이나 들인 길든 거울을…… 문혜가 작년 대학에 들어 갈 때 친구들께 선사로 받은 기념품이라구 끔직이 애끼던 거울인데, 이년아!”

또 두어 번 잔등을 쥐어박더니.

“짜꾸만 섰음 제일이니? 이년아!”

그리고 다시 끌채를 흔들기 시작하는데 문혜가 들어선다.

문혜는 대문 밖에서부터 어머니의 음성을 듣고, 무슨 일로 또 꽃분이를 골릴까, 꽃분이에 대한 측은한 생각이 순간 또 마음을 언짢게 하여서 들어 가 꽃분이의 그 말 못하고 안타까워하는 심정을 위로해 줘야겠다, 어머니의 애매한 욕에 오늘은 얼마나 시달리며 자기가 들어오기를 기다렸을까, 실수 를 이해 못하는 어머니의 협소한 마음을 언제나 같이 야속하게 생각하며 달 려 들어왔던 것이다.

“오, 너 오누나. 이것 봐라, 이년이 네 거울을 잡았다! 글쎄 이걸 어떻 거니 이년을…….”

문혜는 의외의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좇아 눈을 주었을 때 물탕이 된 방바닥에는 두 쪽으 로 동강이 난 거울이 물 위에 긍정하게 잠겨 있음을 보았던 것이다.

순간, 문혜는 가슴이 철렁하고 눈앞이 아득하여지는 그 무슨 어려운 그림 자가 지나가는 환영을 느끼었을 뿐 아무것도 감각하는 것이 없었다. 그 거 울은 동무들에게서 선사를 받은 것이라고 어머니를 속여 오는 것이지만 실 인즉 대학 입학 기념으로 그이에게서 받은 기념품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 거울 속에 그이의 혼이 담긴 것처럼, 그리고 그 혼이 자기의 혼과 완전 히 융합되어 있음을 만족하게 느끼며 책상 위에 세워 놓고 무시로 얼굴을 비취어봄으로 혼과 혼의 융합을 찾아내고는 삶의 보람이 거기에 있는 듯이 그야말로 생명같이 아끼던 거울이었다. 이제 그 거울이 두 조각으로 갈라져 아무렇게나 방바닥에서 구는 것을 볼 때 그것은 그이와 자기와의 장래의 파 탄을 말하는 그 무슨 전도와도 같게 가슴 깊이 마치는 데가 있었던 것이다.

“저년이!”

문혜의 눈은 꽃분이를 쏘았다. 지금 밖에서 느끼던, 아니 오늘까지 여지 껏 그를 불쌍히 여겨 오던 그 측은한 마음은 그 어느 감정의 한 귀퉁이에서 도 움직여지는 일 없이 밉기만 한 꽃분이었다. 어머니의 욕이 천 번 지당한 것 같았다.

“인젠 저년두 상판에다 거울을 댄다? 너 없는데 네 방에 들어가 그 잘난 상판을 쓰다듬다가 아이, 그 아까운 거울을 잡았구나, 저년이…….”

“아니에요, 거울을 본 게 아니에요.”

꽃분이는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리하여 그건 너무도 억울한 이야기라는 듯이, 그리고 그 사유를 문혜는 알아달라는 듯이 거울을 깨치기까지의 경위 를 이야기하였으나 문혜의 귀까지도 그것은 곧이들리지 않았다.

“아 저년두 이젠…….”

정신없는 사람처럼, 처음 들어와 선 그대로 책가방을 든 채 꽃분이에게 쏘였던 눈이 좀더 매섭게 비낄 뿐이었다.

꽃분이의 눈에서는 걷어들었던 눈물이 새롭게 다시금 주르르 흘러 내렸 다. 문혜는 왜 오늘따라 자기의 실수를 알아주지 못할까. 그 언젠가 걸레에 잉크병이 걸려 떨어져 깨어졌을 때에는, “어머니가 너무 오력을 펴지 못하 게 욕을 해서 개 손이 제 자유로 놀려지질 않는 까닭이에요.” 하고 도리어 자기의 편을 들던 문혜였다.

억울한 실수에 등덜미를 쥐어박히며 문혜만이 알아주리라던, 그리하여 문 혜의 돌아옴만이 그렇게도 그리웁던 꽃분이의 마음은 인제 의지할 데가 없 었던 것이다. 문혜는 깨어진 거울이 차마 안타까운 듯이 동강이 난 조각을 주워들고 맞대어 붙여 보다가 인젠 그까짓 다 무모한 짓이라는 듯이 획 내 동댕이를 치며 증오의 눈초리를 다시금 꽃분이에게로 돌려 쏘았다. 꽃분이 의 눈에서는 눈물이 그냥 흘렀다.

〔수록단행본〕*『현대한국단편문학전집』제8권(문원각.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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