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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RT STORY

짐

계용묵 · 약 8분 · 3,811자

❧

짐

1

대문을 들어서자 건너방 문 소리가 나더니 전에 없이 처조카 아이가 마주 달려나오며 숨이 찼다.

“짐, 짐이 왔어요.”

이 소리를 내가 들으면 오죽 반가워하랴, 어서 일러 드리고 싶은 마음에 나 들어오기를 조급히 기다리고 앉았던 모양이다.

“짐, 짐이 두 짝이래요.”

여전히 찬 숨이다.

“짐이 왔어! 두 짝?”

사실 반가웠다.

8·15 이후 굳어진 삼팔선 때문에 겨울옷 한 벌을 댕그라니 입은 그대로 초라히 고향을 떠나 올라와, 이불 한 자리밖에 더 마련을 못 하고 오늘까지 해로 이태, 스물넉 달 동안을 사철 두루 그 옷 한 벌로 지냈다. 그나마 새 것이나 입고 왔더라면 그래도 좀 나을 것이 삼팔경계선에서 입은 옷까지 벗 기고 내의만 남겨 돌려보내는 일도 없는 일이 아니라고들 해서 옷을 벗기울 예정으로 일부러 낡은 것을 택했던 것이다. 몇 달이 못 가서 사타구니 짬이 히룽히룽 물러나며 엉덩이에 창이 드러난다. 이런 걸 천연하게 입고 뻐젓이 나다니게까지 그렇게 나는 탈속을 못했다. 창피해서 그래도 꿰어지지 않은 게 좀 낫지 않을까, 일정 시대 강제에 못 이겨 입던 정말 입기 끔찍한 그 소위 국방복으로(이것은 내 자식이 삼팔선을 넘을 때 입고 온 것) 바꾸어 입었더니 그나마 며칠이 못 가 엉덩이 판이 해작해진다. 이럴 바에야 하필 국방복을 입잘 필요가 없어, 벗어 던졌던 그 동복을 도로 바꾸어 입었다.

이러구러 또 다시 여름을 맞아 벌써 베옷에 노타이가 희끗희끗 날마다 늘어 가는데 동복 그나마도 여지없이 해어진 걸 더덕더덕 꿰매 입고 땀을 흘리며 다니자니 짐이 왔다는 소리가 아니 반가울 수가 없다.

“두 짝이래? 잉이 짐이?”

나는 다시 재차 물었다.

짐이 두 짝이면 시재 입고 살 건 가져왔을 것이다. 눈이 번쩍 뜨인다. 마 루 위부터 살펴보았다.

그러나, 마루엔 아침에 나갈 때와 마찬가지로 배급 받아다 놓은 밀가루 자루가 댕그라니 하나 안쪽 구석에 놓여 있을 뿐, 아무것도 눈에 뜨이는 것 이 없다. 방안에 들여다 놓았나 구두를 벗고 올라서려는데, “봉래정으루 다 왔다구 이자 태진이가 와서 그래서 고문 짐 가지러 갔어 요.”

뒤에 달려 들어오며 처조카 아이는 또 전한다.

봉래정이란 누이의 집이다. 제 남편이 역시 8·15 이후 서울로 올라 와선 내려오지를 않으므로 궁금해서 올라와 보니 집 한 칸을 못 쓰고 전재민이 들어 있는 봉래정 어느 무너져 가는 시멘트 창고 비슷한 움막에 방이라고 신문 조각을 발라 꾸려 놓고 들어앉아 박봉으로 허덕이는 젊은 홀아비 살림 은 말이 아니었다. 서른도 아직 먼 한참 혈기에 돈 일천 오백 원에 목을 매 고 늘어져서 점심도 못 먹고 밀 수제비 빵 조각으로 조석의 끼니나마 간신 히 이어 가는 딱한 사정을 목도하였을 때 아내로서의 누이의 마음은 자못 처량하였던 것이다. 다시 집으로 내려가 가장 집물을 다 팔아 올려다 가두 에 나앉아 빈대떡 장사라도 해야 살 것 같아 삼팔선을 다시 넘어간다고 해 서 이왕이면 그럼 우리 짐도 좀 가져다 줄 수 없겠느냐고 아내는 부탁을 했 던 것이다. 부탁은 하면서도 원체 곧잘 잃는 짐이요 떼이기가 일쑤인 짐이 라, 무사히 올라올 것인가가 자못 의문이었다.

작년 가을 아내도 내가 혼자 와 있는 것을 염려하여 시재 필요한 옷가지 를 륙색에 한 짐 넣어 짊어지고 오다가 기어코 말썽이 생겨 해주 어느 안다 는 여관에 맡겨두었던 것이 그 후 도적을 맞았노라고 빙자하고 내어주지를 않아 한 가지 건지지 못하고 온통 잃어먹은 예도 있다. 그리곤 다시 옷을 가져올 생념이 나지 않아 거지 모양으로 차리고 한번 삼팔선을 넘어온 그대 로, 방공연습에 끌려 다니며 입던 소위 그 몸빼(이것도 아내가 뺏길 예정으 로 일부러 택해서 입고 올라왔던 것) 한 벌에 싸여 치마도 없이 삼동을 났 다. 내 매부보다는 그래도 그 수입이 좀 나은 편이나 월급 푼에 약간의 고 료가 받쳐지는 그러한 정도의 수입으로는 먹고 사는 데만도 여유가 없다.

그런 데다가 이북 고향에서 알몸으로 연일 넘어와 며칠씩 묵삭는 손님이 큰 부담이다. 입는 데까지 눈을 넘겨다볼 겨를이 없었다. 아내 역시 옷가지가 올라왔다는 데 아니 반가울 수 없었을 것이다. 곧 달려간 눈치다.

2

이윽고 대문이 밀리고 아내가 들어서는데 보니 머리 위에는 손재봉틀 한 대가 위태롭게 얹혀 있다.

“아아니! 재봉틀두 가져왔어?”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옷가지도 어려운 데 재봉틀까지…….

“아니, 걔가 이걸 어떻게……?”

“글쎄 말이예요. 아이 고생 무척 했나 봐요.”

아닌 게 아니라 고생은 무척 하였을 게 빤하다.

“청단(靑丹)으루 왔대? 배루 왔대” “청단으루 오면서 배두 타구 하다가 국경을 넘어서야 차를 탔대나요. 아 이, 여자가 혼자서 그걸 어떻게 드다루구…….”

“제 짐두 있을 텐데”?

“있다뿐이겠어요! 방안으로 하나를 가져다 놨는데.”

아내는 그 육중한 걸 이고 봉래정서 이까지, 꽤 목이 아픈 모양이다. 목 을 좌우로 지긋둥지긋둥 일며 운동을 시키더니, “아, 참 좁은데 어서 남의 짐은 치워 줘야겠더라. 범수(처조카) 너 얼른 짐 좀 가서 가져오너라.”

이르고 아내는 마루로 올라와선 재봉틀을 떠나지 못하고 붙들고 앉아, “아이 저걸…… 저걸 글쎄 누이가 가져왔구만.”

하고 어떻게나 만족해하는지 모른다.

옷도 옷이려니와 재봉틀에도 여간 목이 말랐던 아내가 아니다.

얼마 전 꿰어진 내 양복을 들고 남의 집 걸 좀 얻어 써 볼까 떠났다가 병 이 났노라, 혹은 바늘이 없노라, 심지어는 쇠를 잠그고 쇠를 잃었노라 하고 빌리기를 거절하는 집까지 있어 재봉틀 생각이 더욱 간절했던 데다가, 재봉 틀 한 대만 가졌으면 여자도 제 밥벌이는 근심이 없다는 소리를 어디서 얻 어듣고는 삯바느질이라도 해서 군색한 살림에 보탤 의향으로 재봉틀을 어떻 게 하나 구했으면 하고 말을 하다간 그것이 까마득한 공상임을 미루어 보고 는 한숨을 짓곤 하던 그 재봉틀이다. 그런 재봉틀이 뜻밖에도 왔다. 생활의 밑천이 이젠 생긴 것이다. 여섯시를 들어가건만 저녁 지을 생각도 않고, “상헌 덴 없나?”

“인젠 또 실을 사야지. 참 이비갬질 기계가 쫓아왔는지 모르겠군.”

하고 벌써부터 바느질 설계를 세우는 듯이 손잡이를 둘러 보고, 뺄함을 열어 보고 하며 수선이다.

3

짐은 밤에야 왔다.

둥글둥글한 시꺼먼 보자기가 커다란 고리짝 하나만은 한 부피다. 이태나 묵은 껍데기를 갈아입혀 줄 짐 속이라, 이 짐 속이 급하게 엿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짐 앞으로 대뜸 나앉았거니와, “고춧가루도 넣었대더라, 사발두 넣구.”

하고 아내도 덩실 나앉으며 먼저 짐에다 손을 댄다. 과연 고춧가루 단지, 사발개가 짐 속에서 디그르르 미끄러 떨어진다.

“이것 보지! 아이, 어머니가 객지에서 이런 게 오직 귀할까 염려스러워 다 넣어 보냈으리 -.”

이런 것에까지 생각이 미친 어머니를 못내 감사해야하는 듯이 중얼거리며 미끄러지는 족족 들어 내놓는다.

“아이! 장보기두 있네.”

이런 건 참 꿈 밖이라는 듯이 신기해서 나더러도 어머니의 그 주밀한 솜 씨에 감사의 동의를 구하는 것처럼 들어내 가지곤 내 눈앞에 내민다. 나는 보기도 싫었다.

알루미늄 대접 두 개밖에 산 것이 없고, 미국 통조림 깍대기로 밥그릇을 대용하고 있는 그러한 형편이라, 주발 같은 것도 필요치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밥만 있으면 그릇은 문제가 아니다. 지금 모양으로 바가지에다 한 그릇 그냥 떠다 놓고도 통조림통 몇 개면 얼마든지 들어붙어 나누어 먹을 수가 있다. 벗고서는 나다니는 수가 없다. 시급한 문제가 옷가지다. 우선 겨울 양복을 벗어야 살겠다. 그 그릇들 대신에 실제적일 옷가지를 한 가지 라도 더 넣었으면 하는 생각에 나는 도리어 불쾌하기까지 했다.

“이건 또 당신 밥 담아 잡숫던 합(盒).”

“아이! 내 것두 올려보냈어.”

아내는 노상 혼자 흥이 나서 기명을 들어낸다. 이런 걸 다 꺼내 놓고 이 불 한 자리, 요 한 자리를 들어내니 입을 것이라곤 겨우 아내의 바지 두 개 에 치마 하나, 그리곤 겨울에 입을 내 명주 바지저고리 한 벌뿐, 꿰어진 버 선목다리를 빨은 게 다섯 켤레가 된다. 그리고 나중에 남은 손보자기를 풀 어헤치니 버선을 기워 신으란 건지 필(疋)도 아닌 쓸데도 없는 조각 무명 오락지가 그 손보자기로 하나이 가득했다.

기가 막힌다. 양복 한 벌 없다. 내의 한 벌 없다. 대체 이 짐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람도 자유로 다닐 수 없는 삼팔선, 이 삼팔 선을 짐을 가지고 넘어오는 모험, 이런 모험이 다시 두 번 있을 것 같지 않 은 이 기회에 기껏 가져왔다는 것이 없어도 무방할 밥 그릇이요 버선목다리 따위다. 이것이 꾸리는 짐에 주요시되었던 게 분명하다. 이건 필시 저쪽에 서 올려 보낸 사람보다 이쪽에서 이른 사람의 잘못인 탓 같아 보인다.

“여보! 누이더러 어떻게 짐을 가져오라구 일렀기에 대체 온 짐이 이 모 양이오?”

나는 이렇게 아니 물어볼 수 없었다.

“이르긴 머 버선 한 켤레 없어 버선까지 사 신는 형편이라구 그랬지 요.”

“그리군?”

“그릇두 없어 바가지에다 밥을 퍼다가 먹는다구 그랬구요.”

답답한 소리다. 화가 벌컥 동한다.

“그랬으니 짐이 이렇게 된 게 아니요?”

나는 주먹으로 책상을 울렸다.

“그만침 일렀음 다 없다는 소린 줄 알게 아니에요? 누이 저두 와서 형편 을 보기까지 했는데.”

“어머니 같으신 시굴 노인이 서울 있는 지금 우리 형편을 어떻게 그렇게 소상히 안단 말이요? 들음 듣는 대루 짐작할 따름이지, 일러 보내길 똑똑히 일러 보냈음 안 이렇게 되요, 짐이? 듣는 말이 짐 한 짝 넘기는 데 사천 원 이라구 하는데 두 짝임 돈이 얼마야? 입을 것두 없는 장종백이, 버선목다리 를 가져다 놓구 돈이 만 원이야, 만 원!”

안타까움에 나는 다시 책상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그 중 돈이 됨직한 이불이니 요니, 바지저고리 따위 같은 건 다 주워 팔 아도 실상 이 짐삯 만 원을 지울 것 같지 못하다. 빈대떡 장사라도 해서 어 떻게 살아 보겠다고 삼팔선을 넘어가 모험을 해온 돈이다. 갚아 줘도 시급 히 갚아 줘야 할 경위다. 눈앞이 다 아득해진다.

“인젠 재봉틀을 팔아 짐삯을 물어 줘야겠소.”

홧김에 한 말이긴 하나 실상 이렇게 아니 되고는 만 원 구처가 딱하다.

“아이, 양복이 그 장롱 위 양복통에 죄다 들어 있는데 -.”

재봉틀을 판다는 소리가 아내는 가슴에 맺혔는지, 새삼스레 안타까웠다.

“필목(疋木)이나 몇 필 가져왔어두 두 짐삯은 거나 팔아두 지울걸 …….”

그러나 이미 쑤어 놓은 죽이 밥이 되는 수는 없다.

벌여 놓은 짐을 주워 담을 생념도 없어 멍하니 저대로 벽만 건너다보며 앉아 있었다.

(1947. 5 28.)

〔발표지〕《백민》 (1947. 8) 〔수록단행본〕『별을 헨다』(처희문사.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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