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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RT STORY

17원 50전

나도향 · 약 27분 · 13,393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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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원 50전(十七圓 五十錢)

── 젊은 화가 A의 눈물의 한 방울 ──

1

사랑하시는 C선생님께 어린 심정에서 때없이 솟아 오르는 끝없는 느낌의 한 마디를 올리나이다.

시간이란 시내가 흐르는 대로 우리 인생은 그 위에서 뱃놀이를 하고 있읍 니다. 늙은이나 젊은이나, 마음 아픈 이나 가슴 쓰린 이나, 행복의 송가(頌 歌)를 높이 외는 이나 성공의 구가(謳歌)를 길게 부르짖는 사람이나, 이 시 간이란 시내에서 뱃놀이하지 않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오늘 이 편지를 선생님께 올리는 이 젊은 A도 시간이란 시내에 일엽편주 (一葉片舟)를 띄워 놓고 끝 모르는 포구(浦口)로 향하여 둥실둥실 떠갑니 다.

어떠한 이는 쾌주하는 기선을 탔으며, 어떠한 이는 높다란 돛을 달고 순풍 에 밀리어 갑니다. 또 어떠한 이는 밑구멍 뚫어진 거룻배를 이리 뒤뚱 저리 뒤뚱 위태하게 젓고 갑니다.

또 어떠한 배에서는 하품하고 기지개 켜는 소리가 들립니다. 또 어떠한 배 에서는 장구를 두드리고 푸른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어떠한 배에서는 불 그레한 정화(情話)의 소곤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어떠한 배에서는 여자의 애끓는 울음소리가 납니다. 어떠한 배 속에서는 촉루(髑髏)가 춤을 추고, 어떠한 배 속에서는 노름꾼의 코고는 소리가 납니다.

그러나 이 A의 탄 배에서는 무슨 소리가 들리는 줄 아십니까? 때없는 우울 과 비분과 실망과 고통과 원망이 뭉텅이가 되고 덩어리가 되어 듣는 이의 귓구멍을 틀어막는 듯이 다만 띵하는 머리 아픔이 있을 뿐이외다.

나와 같은 배를 띄워 같은 자리를 지나가는 배가 몇백 몇천 있읍니다. 그 들은 다만 서로 바라보며 기막혀 웃을 뿐이외다. 그리고 서로 눈물지을 뿐 이외다.

선생님! 이 배가 가기는 갑니다. 한 시간에 오 리(五里)를 가거나 단 일 리(一里)를 가거나 가기는 갑니다. 그러나 그 배가 뒷걸음질칠 리는 없을 터이지요? 가기만 하는 배는 우리를 실어다 무엇을 하려 할까요? 흐르는 시 간은 말이 없고 뜻이 없으매 다만 일정한 규칙대로 가기는 가겠으나 뜻 없 고 말 없는 시간이란 시내 위에 이 A는 무슨 파문(波紋)을 그려 놓아야 할 까요?

새벽 서리 찬바람에 차르럭 찰싹 뛰어 노는 어여쁜 물결입니까? 아침 저녁 멀리 밀려왔다 멀리 밀려가는 밀물의 스르렁거리는 물결입니까? 초승달 갸 웃드름하게 비친 푸르렀다 희었다 하는 깜찍한 파문입니까? 어떻든 저는 무 슨 파문이든지 그 시간이란 시내 위에 그리어 놓아야 할 것이외다. 하다못 하여 시꺼먼 물결 위에 푸 ── 하게 일어나는 거품일지라도 남겨 놓고야 말 것이외다.

선생님! 그러나 그 파문을 그리려 하나 그릴 수가 없읍니다. 하늘의 바람 은 너무 강하고 몰려오는 물결은 너무 힘이 있읍니다. 인습이란 물결이 이 작은 편주를 몰아낼 때와 육박하는 환경의 모든 시꺼먼 물결이 가려고 하는 이 A라는 조그만 배를 집어삼키려 할 때 닻을 감으랴, 노를 저으랴 가려고 는 합니다마는, 방향을 정하려 하나 팔에 힘이 약하고, 가려고 하오나 나를 이끌어 나아가게 하는 힘있는 발동기를 갖지 못하였읍니다. 그나 그뿐입니 까? 어떠한 때는 폭우가 내리붓고, 어떠한 때에는 광풍이 몰려와 간신히 댓 둥거리는 이 작은 배를 사정없이 푸른 물결 속에 집어 넣으려 합니다.

아아, 선생님! 그나 그뿐이 아니외다. 어떠한 때는 어두운 밤이 됩니다.

울멍줄멍하는 노한 파도가 다만 시꺼먼 암흑 속에서 이리 뛰고 저리 뜁니 다. 하늘에서 희망의 별 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저쪽 어귀에 희미하게 비치 는 깨알 같은 등대의 깜빡거리는 불도 꺼질 때가 있읍니다.

그러나 저는 가렵니다. 약하고 힘없는 두 팔 두 다리로 저 보이지 않는 포 구(浦口)를 향하여 형형색색의 파문을 그리면서 가기는 가렵니다. 오늘에 그리어 놓은 파문의 한 폭이 내일에 그릴 파문을 낳고, 내일에 그리어 놓은 파문의 한 폭이 모레의 그것을 낳아 저쪽 포구에 이를 때에는 대양(大洋)으 로 나아가는 힘있는 여울 물결 위에 거룩하고 꽃다운 성공의 파문을 그리려 합니다.

아아, 그때에는 암흑에 날뛰는 미친 파도나, 때없는 폭풍우나, 밀려오는 인습의 물결이나, 모든 환경의 그 모진 파도가 그 거룩하고 꽃다운 파문 하 나는 지워 버리지 못할 것이며 삼키어 버리지 못할 것이요, 이 작은 일엽편 주는 그 때가 되어 바위에 부딪쳐 깨어지거나 물결에 씻기어 사라지거나….

저는 다만 죽어 가는 목구멍 속으로라도 넘치는 환희와 북받치는 기쁨으로 영생의 노래를 부를 것이외다.

2

오늘은 웬일인지 일기가 전에 보지 못하게 음침합니다. 답답한 심사와 침 울한 감정을 양기(陽氣)있고 청징(淸澄)하게 하려 애를 썼으나 그것은 실패 하였읍니다.

아침에 밥을 먹는 저는 열 두 시가 되도록 습기찬 땅바닥에 누워 있었읍니 다. 오고가는 공상이 어떠한 때는 저를 웃기더니 어떠한 때는 울리더이다.

저의 젊은 아내는 오색 종이로 바른 반짇고리를 옆에 놓고 별 같은 두 눈을 깜빡거리며 저의 입고 나갈 두루마기 끈을 달고 있었나이다. 저는 저의 아 내를 볼 때마다 불쌍한 생각이 납니다. 나이 젊은 아내의 고생살이를 생각 할 때마다 저의 심정은 웬일인지 쓰립니다. 제 옆에 앉아 있는 그 젊은 아 내가 과연 저의 이상(理想)을 채우는 아내는 아니외다. 사랑과 사랑이 결합 하여 된 부부가 아니외다. 자각 있는 애인의 조화있는 사랑은 아니외다. 그 는 무엇을 믿고서 나의 아내가 되었으며, 무슨 각성을 가지고 나를 사랑하 는지 알 수가 없읍니다. 애인과 애인이 서로 만나는 것이 가장 큰 대담한 일이라 하면, 애인도 아니요 애인도 아닌 이 두 사람의 서로 결합된 것도 위태하게도 대담한 것이외다.

위태한 짓을 똑같이 한 이 A는 불쌍한 용자(勇者)이지마는 그것을 지금까 지 알지 못하는 저의 젊은 아내도 어리석은 용자이외다. 우리 두 사람이 과 연 원만하게 사랑의 가락을 두 몸에 얽어놓았읍니다. 강대한 세력을 두 사 람의 붉은 피 속에 부어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나 이런 자식은 절더러 「아빠, 아빠」 합니다. 그리고 저의 아내더러 는 「엄마, 엄마」 합니다. 「엄마, 아빠」라 부르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 다 알지도 못하게 저의 마음은 깨끗하여지며 어느 틈엔지 따가운 귀여움이 저의 가슴을 채웁니다. 어린애가 웃으면 저도 웃읍니다. 그러면 저의 아내 도 웃읍니다. 저의 아내의 웃는 눈은 반드시 나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철없는 아이가 재롱부려 웃을 때는 저의 웃음과 저의 아내의 웃음소리는 보이지 않는 공중에서 서로 얼크러져 입을 맞춥니다. 그때에는 모든 불행, 모든 고통이 그 방안에서 내쫓기어 버립니다.

오늘도 남향한 창에는 햇볕이 따뜻하게 드는데, 철없는 어린 자식은 방 한 귀퉁이에서 자막대기를 가지고 몽실몽실한 두 다리를 쪽 뻗고서 무엇이 그 리 재미있는지 콧소리를 쌔근쌔근하며 장난을 하고 있을 때, 답답한 감정이 공연히 저의 상을 찌푸리게 하였으나, 근지러운 살과 부드러운 입김을 가진 저의 아내가 고요한 침묵을 가는 바늘로써 바느질할 제 웬일인지 눈은 감고 저의 전신의 모든 관능(官能)은 힘을 잃은 것 같이 노곤하여졌나이다.

잠들지 않은 나의 정신은 혼농(昏膿)한 가운데 젖어 있을 때 나의 아내는 무엇을 생각하였는지, 『여보셔요, 날이 점점 추워 오는데 월급 되거든 어린애 모자 하나 사오셔 요』 하였읍니다. 이 말을 듣는 저는 듣고도 못 들은 체하였읍니다. 그리고 속마음으로는 「화구(畫具)도 살 것이 있고 책도 좀 사야 할 터인데 어린애 모자는 천천히 사지」 하며 아내의 말에 공연한 심증이 났읍니다. 그 심증 은 결코 아내의 말이 부당한 말이나 어린아이의 모자를 사다 주는 것이 아 까와 그러한 것이 아니라, 경제의 압박을 당하여 오는 저는 돈이란 소리가 나올 때마다 쌓아오고 쌓아 온 불평이 공연히 좋던 감정도 얼크러뜨려 버립 니다.

저의 아내는 여러번 그런 일을 말하면서도 저의 대답하지 않는 것이 무안 한 듯이 한참이나 아무 소리가 없다가, 『왜 남의 말에 대답이 없소?』 하였읍니다. 나는 여전히 말대답이 없이 드러누워 있었읍니다. 아내는 또다시, 『어린애 모자 하나 사다 주기가 무엇이 그리 어려워서…』 하더니 아무 소리도 없이 다 꿰맨 두루마기를 툭툭 털어 저의 누워 있는 다 리위에 툭 던졌읍니다.

자막대를 가지고 장난하던 어린애는 모자 소리를 듣더니, 『때때모자? 응! 엄마?』 하고 벙긋벙긋 웃으면서 저의 아내를 쳐다보며 달려듭니다. 이것을 본 저의 아내는 토라졌던 얼굴을 다시 고치었는지, 『글쎄, 이것 좀 보시우! 모자, 모자 하는구료!』하며 아무 말 없이 두 눈 위에 팔을 얹고 누워 있는 저의 가슴을 가만히 연하고 부드럽게 흔들었읍니 다. 저의 아내의 매낀매낀한 손가락이 저의 옷 위에서 꼼지락거릴 때에 저 의 피부 밑으로 지나가는 신경은 무엇에 취한 듯한 감각을 저의 핏결 속에 전하는 듯 하였읍니다.

저는 다만, 『왜 이래? 귀찮아』 하고 팔꿈치로 아내의 손을 툭치며 다시 돌아 누웠읍 니다. 제가 본래 신경질임을 아는 저의 아내는 조금도 노여워하는 기색이 없이 다만 생글 웃으면서 가장 노한 듯이, 『그만두구료! 어서 옷이나 입고 나아가요. 대낮에 드러누워 있는 것이 갑 갑해 못 견디겠구료』 하는 목소리는 웬일인지 마음 약한 저의 거짓 노여워 함을 오래 가게는 못하였읍니다. 저는 다만 벌떡 일어나며 아내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 『에이! 그 등쌀에 누워 있을 수가 있어야지. 두루마기 어쨌소?』 하며 웃 음을 참지 못하고 빙그레 웃었읍니다. 저의 아내도 웃음이 떠도는 얼굴에 거짓 노여움을 섞으면서, 『그것 아니고 무엇이요?』 하며 방바닥에 놓여 있는 저의 두루마기를 가 리켰읍니다.

저는 다만 무안한 가운데도 우스운 생각이 나서 아무 말 없이 두루마기를 입고, 『지금 몇 시나 되었을꼬?』 하며 혼잣말을 하고는 모자를 집어 썼읍니다.

저는 바깥으로 나왔읍니다. 젊은 아내와 정에 겨운 싸움을 하고 나온 저의 마음은 바깥에 나와서 비로소 그 시간에 일어난 역사가 그립고 애착하는 생 각이 났읍니다. 새로운 공기와 푸른 하늘이 거의 공연히 센티멘털한 심정을 녹이며 부드럽게 하여 줄 때 웬일인지 반 웃음과 반 노여움을 섞은 저의 젊 은 아내의 얼굴과 그의 표정이 말할 수 없이 저의 마음을 매취(魅醉)케 하 는 듯하였읍니다.

저는 저의 친구를 찾아 MW사(社)로 향하여 오면서 생각하는 것은 저의 아 내뿐이었으며, 그 아내가 청하던 어린 자식의 새 모자였읍니다. 저는 월급 을 타거든 모자를 사다 주리라 하였읍니다. 그래서 어린아이의 마음을 기꺼 웁게 하기도 할 뿐만 아니라 아이의 어머니 된 젊은 아내의 마음을 즐거웁 게 하여 주리라 하였습니다.

3

MW사의 왔읍니다. DH, WC는 서로 바라보며 무슨 걱정인지 하고 있었읍니 다. 웬일인지 그 넓지 못한 방안에서는 검푸른 근심의 그늘이 오락가락하였 읍니다.

저는, 『웬일들이야, 무슨 걱정 들었나?』 하였읍니다. 얼굴 검은 DH는, 『그렇지 않아도 자네를 기다렸네. 그런 게 아니라 NC의 아내가 앓는다는 기별이 왔는데 본래 구차한 그 사람이 어떻게 근심을 하겠나? 그래서 오늘 NC의 집까지 가볼까 하고 자네를 기다리던 터인데.』 『무어야? NC의 아내가?』 『그래.』 『그것 안 되었네그려! 그러면 언제 가려나? 차비들은 준비되었나?』 『그것은 내가 준비하였어.』 『그러면 가보세그려.』 저는 다만 친구의 불쌍한 처지에 동정하는 마음을 견디지 못하였읍니다. NC의 집은 시골입니다. 더구나 한적한 촌입니다. 그 의 생활은 부유롭지 못하고 빈곤합니다. 그는 지금 자기의 손으로 농사를 지읍니다. 아침에 괭이 메고 논으로 갑니다. 저녁이면 시름없이 자기 집으 로 돌아옵니다. 돌아온 그는 깜빡깜빡하는 유경(鍮檠) 밑에 깨알 같은 책을 봅니다. 그리고 시를 씁니다. 그의 시는 선생님도 보신 바가 있겠지요마는 참으로 완벽을 이룬 것이 적지 않습니다. 저는 NC의 한적한 생활을 부러워 합니다. 조금도 불평이 없이, 조금도 변함이 없는, 그의 굳은 신앙 아래 살 아가는 것을 저는 부러워합니다.

저는 그의 눈물을 못 보았읍니다. 그는 한숨이 저의 귀를 서늘하게 하지 못 하였읍니다.

4

사랑하시는 선생님, 사람의 눈물이 있다고 하면 이러한 경우에 울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지요? 만일 참으로 그 눈물이 눈물이라고 하면 이와 같은 눈물이 참 눈물이겠지요.

오늘 저녁이외다. 저희 세 사람은 NC가 사는 시골에 왔읍니다. 정거장에서 십 리를 걸어 들어올 제 저희 세 사람은 참으로 공통된 의식, 공통된 감정 을 머리속과 가슴속에 품고 있었읍니다.

멀리 보이는 작은 별들은 옛날의 동방박사(東方博士)들을 베들레헴으로 인 도한 듯이 우리를 보고서 재롱부려 깜박거립니다. 다닥다닥한 좀생이는 간 지러운 듯이 옹기종기합니다. 밤은 어둡고 길은 험하오나 저희를 이끌어 가 는 그 무슨 세력의 선(線)이 끝나는 저편에는 반정(反情)이라는 낙원이 있 읍니다. 동지라는 그리운 「에덴」이 있읍니다. 말이 없고 소리가 없이 걸 어가는 우리 세 사람은 다만 쓸쓸하고 적막하고 심심하고 무미담담한 NC의 집을 찾아가면서도 우리의 끓는 피와 타는 정열은 그 찾아가는 한적한 농촌 을 싸고도는 가만한 공기를 꽃답고 찬란하게 그려 놓으려 하였읍니다.

그러나 NC의 집에 다다랐을 때가 되었읍니다. 초가집 가장자리를 싸고 도 는 암흑 속에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혼자 왔다갔다 하는 사람이 있었읍니 다. 그는 그때 눈을 감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읍니다. 우리는 그를 NC로 알았읍니다. 우리는 다만, 『NC!』 하고 반가운 두 손을 내밀었읍니다. 이것을 본 NC는 다만 아무 소 리가 없이 파리한 두 손을 내밀며, 『야! 어떻게들 이렇게 내려왔나?』 하며 힘없는 말소리에 처량한 기운이 도는 목소리로 대답을 하였읍니다. 우 리 세 사람 마음속에는 NC의 말소리를 들은 때에 그 무슨 애매한 의식(意 識)을 깨달았읍니다. 인생의 애가(哀歌), 마음 아프고 가슴 저린 그 무슨 노래를 듣는 듯이 NC의 목소리에서는 푸른 기운이 돌았읍니다.

NC는 아무 말이 없이 다만 번갈아 가며 우리 세 사람의 손을 단단히 쥐었 읍니다. 그리고는, 『나의 아내는 삼십 분 전에 영원한 해결(解決)의 나라로 갔네』 하였읍니 다.

NC의 눈에서는 여태까지 보지 못하던 눈물이 흘렀읍니다. NC의 가슴은 에 이고 붉은 피는 식고 애탄의 결정(結晶)인 뜨거운 눈물은 다만 차디찬 옷깃 을 적시고 시름없이 식어 버리더이다.

그 누가 말한 바와 같이 하늘에는 별이 있읍니다. 땅에는 꽃이 있읍니다.

바다에는 진주가 있읍니다. 우리 사람에게는 뜨겁게 반짝이는 눈물이 있읍 니다. 누가 이것을 보고 울지 않은 이가 있고, 누가 이 꼴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있을까요? 우리 세 사람은 한참이나 선 채로 울었읍니다.

친한 친구, 사랑하는 동지자의 사랑하는 아내가 죽어간 것을 보았을 때 새 삼스럽게 우리 인생의 모든 비애가 심약(心弱)한 우리들을 울리었읍니다.

5

오래 뵈옵지를 못하였읍니다. 일 주일 동안이나 NC의 집에 있었읍니다. NC 의 아내의 장례는 저희가 시골에 간 지 이틀 뒤였읍니다.

초가을은 으스스하였읍니다. 나뭇잎은 시체를 담은 상여 위에서 시들어 가 는 듯이 춤을 추었읍니다. 상여꾼들의 목늘여 부르는 구슬픈 구가(韭歌)는 길고 느리게 공동묘지로 향하는 산고개를 넘어가더이다.

아! NC의 아내는 영원히 갔읍니다. 동리를 거치고 산모롱이를 지나서 영원 히 갔읍니다. 그러나 NC의 머리속에서 끝없이 울고 있을 그의 환영(幻影)은 길고 긴 세월을 두고 우리 NC를 얼마나 울릴까요. 회고의 기억 속에서 시들 스럽게 춤추는 그의 그림자는 몇 번이나 NC의 두 눈을 감개무량하게 하겠읍 니까?

새벽 서리 차디찬 밤, 초승달 갸웃드름한 저녁에 애타는 옛 기억 맘 아픈 옛 생각은 어느 곳 어느 자리에서 우리 NC를 울릴까요?

제가 NC의 아내의 장례에 참례하였을 때에는 저도 또한 죽음과 생의 경계 선에 서있는 듯하였읍니다. 죽음과 삶이라는 것이 무엇이 다를 것인가요?

살았다 함은 육체에 혈액이 돌고 모든 것을 의식하고 모든 것을 감각한다 함입니까? 죽음이라는 것은 모든 관능이 육체의 썩어짐과 함께 그 활동을 잃어버린다 함입니까? 저는 무한한 비애를 아니 느낄 수가 없읍니다.

6

어저께 시골서 올라왔읍니다. 오늘은 웬일인지 일기가 청명하더이다. 가냘 프고 달콤한 공기가 저의 콧속을 통하여 쉴새없이 벌룩거리는 폣속으로 지 나 들어갈 때 어제까지는 시들은 듯한 저의 혈액은 정(淨)해진 듯하더이다.

「낙망」이라는 그림을 그리면서 낙망을 염려하는 저는 쉬지 않고 꽃다운 희망으로 저의 가슴을 채웠었읍니다. 그윽한 법열(法悅) 속에서 브러쉬와 Palette(調色板[조색판])를 움직일 때 저는 살았으며 생의 진실을 맛보았읍 니다. 다만 제가 팔레트 판을 들고 캔버스를 격하여 앉았을 때가 저의 참 생(生)이었읍니다. 「낙망」이라는 모토를 가진 그림을 그리면서도 무한한 장래와 끝없는 유열(愉悅)이 있었읍니다. 애인의 손을 잡고 그의 귀밑에 눈 물을 떨어뜨리며 자기의 흉중을 하소연할 때와 같이 정결하고 달콤한 맛이 저의 전신을 물들였읍니다.

오늘은 웬일인지 정신이 청징하였읍니다. 일 주일 가까이 자극이 적은 향 토에서 논 까닭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떻든 한아(閑雅)한 정신으로 노곤한 안일 속에 오늘 하루를 지내었읍니다.

그러나 안일에도 권태가 있고 법열도 깨일 때가 없지 않았읍니다. 육체의 권태는 정신까지 권태하게 하더이다. 또다시 법열까지 깨뜨려 버리더이다.

저는 기지개 한 번 하고 팔레트 판을 내던졌읍니다. 그리고 캔버스를 집어 치우고 외투를 입고 모자를 쓰고 시계를 보았읍니다. 그 시계는 두 시를 가 리키고 있었읍니다. 저는 두 시간의 여가가 있음을 알았읍니다. 그래서 그 권태를 녹이기 위하여 SO의 집으로 가려 하였읍니다.

SO는 불쌍한 여성이외다. 한 다리가 없는 불구자이외다. 나이는 이십 세이 외다. 그는 한 쪽 없는 다리를 끌면서 추우나 더우나 학교에를 십여 년이나 다녔읍니다. 제가 중학교 사년급 다닐 때에 날마다 아침이면 같은 길모퉁이 에서 만나는 것이 연(緣)이 되어 그와 사귀게 되어 지금까지 삼 년 동안을 지내 왔읍니다.

그에게는 나이 늙은 어머니 한 분밖에는 없읍니다. 아침이나 저녁에 학교 에 가고올 때에는, 그는 반드시 자기 딸의 학교에 가고 학교에서 오는 것을 바라보고 기다렸다 합니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어 늦게 돌아오게 되면 그의 늙은 어머니는 반드시 학교 문 앞에까지 와서 자기의 딸을 기다리고 있었다 합니다.

아아! 선생님, 불구자의 모녀의 생활은 참으로 눈으로 볼 수 없는, 생각할 수 없게 불쌍하고 참담합니다. 그의 물질적 생활은 이 세상에서 제일 비참 합니다. 그는 남의 집 곁방에서 바느질품으로 그날 그날의 생활을 계속하고 있읍니다.

오늘도 그 불쌍한 불구자를 찾아왔읍니다. 문을 들어서며 기침을 두어 번 하였읍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그전에는 반드시 반가이 맞아 주던 그 불구의 여성! 오늘은 그의 그림자를 볼 수가 없었읍니다.

문간에 들어선 저의 마음은 저녁날에 산골짜기를 헤매는 듯이 휘휘하였읍 니다. 가련한 불구의 여성이 나를 맞아 주지 앉는 것이 저의 마음을 울게 하였읍니다.

저는 또다시 기침을 하고 구멍이 뚫어지고 문풍지가 펄럭펄럭하는 방문을 열려 하였읍니다. 그러나 저는 그 문을 열지 못하였읍니다. 숭숭 뚫어진 문 틈으로 새어 나오는 불구인 여성의 모녀의 울음소리는 저의 감정을 연민(憐 憫)의 정으로 물들였읍니다. 저는 다만 망연하게 아무 말 없이 서 있었읍니 다. 말없이 서 있는 저의 주위는 나른한 공기가 불구자의 어머니와 불구인 여성의 울음소리를 싣고서 시들어지는 듯이 선무(旋舞)를 추었읍니다.

조금 있다가 문이 열리더니 나오는 사람은 그의 늙은 어머니였읍니다. 그 는 치맛자락으로 눈물을 씻으면서 저를 바라보더니, 『오셨읍니까? 어서 방으로 들어가시지요?』 하며 돌아서서 코를 풀었읍니 다. 저는 무엇이라 물어 볼 말도 없거니와 또다시 말할 것도 없어 다만, 『네, SO는 있나요?』 하며 방안을 들여다보았읍니다. SO의 어머니는, 『네. 있어요』 하며 방안을 들여다보며, 『얘, 선생님 오셨다』 하였읍니다.

방안에는 SO가 돌아앉아 여태껏 울고 있는지 차마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다만 치마끈으로 눈물을 씻고 있었읍니다. 그러나 제가 온 것을 보고서는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몸을 틀어 돌아앉으면서, 『어서 오십시오』 하고 말갛게 피가 오른 두 눈으로 저를 쳐다보더니 다 시 눈을 방바닥으로 향하였읍니다. 저는 들어가기를 주저하였읍니다. 그렇 다고 그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읍니다. 저는 구두끈을 끄르고 그 방안으로 들어갔읍니다. 방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마루 끝에 놓여 있던 SO의 다리를 대신하는 나무다리가 저의 발길에 채여 덜컥하더이다. 저는 그때 근지럽고 누가 옆에서 「에비」하고 징그러운 것을 저의 목에다 던져 주는 듯이 진저 리를 치는 듯이 방안으로 뛰어들어갔읍니다.

SO는, 『오늘은 시간이 없으셔요?』 하며 다른 때와 다르게 유심히 저를 쳐다보 았읍니다, 저는, 『이따가 네시에나 시간이 있으니까요, 잠깐 다녀가려고 왔어요』 하고 자 리를 정하고 앉았읍니다.

『댁에 무슨 좋지 못한 일이 생겼읍니까?』하고 저는 그의 운 이유를 알아 보려 하였으나 그는 다만, 『아녜요』 하고 부끄러움을 띠며 아무 말이 없었읍니다.

저도 또다시 무엇이라 물어 볼 수가 없어서 다만 사면만 돌아다보며 아무 소리가 없었읍니다.

SO는 한참이나 가만히 있었읍니다. 그러다가 반쯤 떨리는 목소리로, 『선생님!』 하고 저를 부르더니 또다시 아무 말이 없이 한참이나 꼼지락꼼 지락하는 손가락만 바라보다가 저의,『네』 하는 대답을 재촉하는 듯이 또 다시, 『선생님!』 하였읍니다. 저는, 『네』 하고 그의 구부린 머리의 까만 머리털만 바라보았읍니다.

『저는 병신입니다』 하더니 여태까지 참았던 눈물이 또다시 떨어져 방바 닥 위로 시름없이 굴렀읍니다. 이 소리를 듣는 저도 울고 싶었읍니다.

『저는 병신인데요』 하고 힘있는 어조로 또다시 한 말을 거푸 하더니 그 대로 방바닥에 엎드려져 울면서 목멘 소리로, 『병신인 저도 피가 있고 감정이 있읍니다. 뜨거운 눈물과 새빨간 정열이 있읍니다. 그러하나 불쌍한 저는 그 눈물을 가지고 혼자 우나 그 눈물을 알 아 주는 사람이 없으며, 그 정열을 혼자 태웠으나 그것을 받아 주는 이가 없어요. 불쌍한 사람은 세상에서 더욱 불쌍한 구덩이에 틀어박으려 할 뿐이 야요』 하며 느껴가며 울었읍니다.

『저를 A씨는 불쌍히 여겨 주십니까? 만약 참으로 불쌍히 여겨 주신다 하 면 이 저의 마음까지 알아 주셔요』 하고 애소하듯이 저의 무릎에 엎디어 울었읍니다.

선생님! 누가 이 말을 듣고 울지 않는 자가 있으며, 누가 불쌍히 여기지 않는 자가 있을까요? 저는 그만 SO를 껴안고 한참이나 울었읍니다.

『SO씨, 울지 마셔요, 나는 당신을 불쌍히 여깁니다. 참으로 동정합니 다.』 『그러면 한 다리 없는 불구자인 저를 길이길이 사랑하여 주시겠어요?』 이 말을 들은 저는 다만, 『네?』 하고 아무 말이 없었읍니다. 저는 그 말에 대답을 하지 못하였읍 니다. 저의 눈 앞에 나타나 보이는 것은 저의 나이 젊은 아내였읍니다. 자 막대기 가지고 놀고 있던 어린아이였읍니다. SO는, 『네? A씨 대답을 하여 주셔요』 하고 저를 애소하는 두 눈에 방울방울 눈 물을 괴고서 쳐다보았읍니다.

아! 선생님. 이 SO를 저는 참으로 불쌍히 여깁니다. 참으로 동정합니다.

그가 눈물을 흘릴 때에 나도 눈물을 흘립니다. 그가 속태울 때에는 나도 속 을 태우려 합니다. 하늘 아래 지구 한 점 위에서 꼼지락거리는 이 병신인 SO를 저는 힘껏 붙잡고 울더라도 시원치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선생 님, 그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는 그 찰나 사이에 벌써 사랑이라는 것이 간 것이 아닐까요. 그의 손을 잡고 따라서 같이 우는 것이 벌써 사랑이 아 니었을까요?

그러나 이 불구의 여성은 저를 사랑하려 합니다마는 저는 여성의 사랑을 얻고서 도리어 가슴이 아팠읍니다. 진정한 사랑을 받으면서 그것을 물리치 지 않을 수가 없었읍니다.

저는 불구의 여성의 뜨거운 사랑을 받기에는 너무 불행한 사람이외다.

선생님! 육체의 불구자는 그 불구를 동정한 저로 말미암아 사랑의 불구자 가 될 줄이야 꿈에나 알았사오리까? 사랑은 곧은 것이요 굽은 것 아니니 저 는 벌써 그 곧은 길 위에 선 사람이외다. 저의 아내를 사랑하지 않은 바가 아니었나이다. 그러면 저는 저의 아내에게로 향하는 꼿꼿한 사랑을 일부러 꺾어 이 불구의 여성을 사랑할 수는 없었읍니다. 불구의 여성이 불구의 여 성이므로 그를 동정하는 동시에 저의 사랑을 불구가 되게 할 수는 없었읍니 다. 그러나 이 불구자의 눈물은 그 눈물이 저의 무릎 위에 떨어지는 때부 터, 아니올시다. 그의 사랑이 저에게로 향할 때부터 벌써 그의 가슴에 어리 어 있는 사랑을 불구자 되게 하였읍니다. 그는 한 다리가 없는 것과 같이 그의 사랑은 한 쪽 없는 사랑이었읍니다.

저는 다만, 『SO씨! 울지 마셔요. 저의 가슴은 SO씨의 눈물로 인하여 녹아 버리는 듯 하외다. SO씨의 눈물 방울이 저의 마음 위에 한 방울씩 두 방울씩 떨어질 때마다 그 무슨 화살을 꿰뚫는 듯이 아프고 쓰립니다』 할 뿐이었읍니다.

『A씨, 저는 다만 A씨 한 분이 저를 참으로 사랑하여 주실 줄 알았었는데 요』 하는 SO는 그 무슨 대답을 기다리는 듯이 아무 말이 없었읍니다. 저는 다만, 『그만 우셔요. 자! 일어나셔요』 하고 가리지 못한 눈물을 씻을 뿐이었나 이다.

저는 어젯날까지 많은 여성의 사랑을 받는 자를 행복자라 하였었읍니다.

그러나 오늘 이 불구자의 하소연을 들을 때에 비로소 정(情)의 가슴이 아팠 었읍니다. 한 개의 사랑을 두 군데로 찢으려 할 때, 그 아픔을 알았었읍니 다. 그 쓰림을 알았읍니다. 한 개인 사랑을 가진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의 여 러 사랑을 받는 것의 그 가슴 저리고 불행한 것을 알았읍니다.

아! 그러나 그 불구자는 더욱더욱 불구자가 되어 갈 터이지요. 낙망과 원 한의 심연에서 하늘을 우러러 그의 불행을 부르짖을 터이지요? 그 부르짖음 의 애처로운 소리는 저의 피를 얼마나 식힐까요? 그 소리는 영원까지 저의 피를 얼마나 식힐까요? 그 소리는 영원까지 저의 귀밑에서 슬피 울 터이지 요?

선생님! 저는 이 참으로 사랑하는 여성의 사랑을 매정하게 물리쳐야 할 것 입니까? 영원토록 받아 주어야 할 것입니까? 불쌍한 자의 울음을 들어 주어 야 할 것입니까? 불구자의 애소의 눈물을 저의 가슴에 파묻히도록 안아야 할 것입니까? 저는 다만 기로에 방황하며 약한 심정을 정하지 못하고 헤맬 뿐이외다.

『네, 알았읍니다. 그러나 저는 SO씨의 말씀에 그렇게 속히 대답할 수는 없읍니다.』 『그러면 언제 대답을 하여 주시겠읍니까?』 『네, 그것은 천천히 해드리지요』 하는 묻고 대답하는 말이 우리 두 사람 가운데에는 교환되었읍니다.

SO는 의심하는 듯이, 『그러면 저를 절대로 사랑하여 주시지는 않는다는 말씀이지요? A씨의 가 슴에는 저를 위하여서는 절대의 사랑이 없으시다는 말씀이지요?』 하며 원 망 하듯이 저를 쳐다보았읍니다. 저는 무엇이라 대답해야 할는지 몰랐읍니 다. 참으로 저에게 절대의 사랑이 그때 있었읍니까? 참으로 없었읍니다. 절 대의 동정과 연민은 있었을는지 알 수 없어도 절대의 사랑은 없었읍니다.

타산이 있었으며 주저가 많았읍니다. 어떠한 때에는 불구자라는 근지러운 대명사가 진저리치게까지 하였읍니다.

아무 대답도 없는 저를 보던 SO는, 『저는 알았읍니다. 저는 영원토록 불구자이외다. 한 귀퉁이가 이즈러진 사랑의 소유자이외다. 그뿐 아니라 저는…』 하더니 단념과 원망이 엉킨 두 눈에는 어리석은 눈물이 어느 틈에 말라 버리고 냉소와 저주가 맺힌 듯할 뿐이었읍니다. 이 소리를 듣는 저는 어쩐지 마음이 으스스 차고 몸이 달달 떨리는 듯 하여 그의 눈물을 다시 보고 싶었읍니다. 그리고는 그의 단념과 원망과 냉소와 저주가 맺힌 듯한 표정을 볼 때 저는 또다시 그의 마음을 풀 어뜨리어 힘없고 연하게 울리고 싶었읍니다. 저는, 『SO씨!』 하고 그의 손을 잡으며, 『저는 영원토록 SO씨를 잊지는 못하겠 읍니다』 하였읍니다. 그는, 『네. 저를 잊지 말아 주셔요. 저도 눈을 감을 때까지는 A씨를 잊지 못하 겠지요』할 뿐이었읍니다.

7

SO의 집에서 나온 저는 학교를 향하여 갔었읍니다. 아직까지 청징하던 심 신(心神)은 웬일인지 불구인 여성의 집을 다녀 나온 후부터는 흐릿하고 몽 롱할 뿐만 아니라 침울하고 센티멘털로 변하였읍니다.

저는 학교에를 갑니다. 한 시간의 도화를 가르치기 위함보다도 그 보수를 바라고 갑니다. 세상에 제일 불행한 범죄가 있다 하면 아마 이와 같은 자이 겠지요. 뜻하지 않고 내 마음에 있지 않은 짓을 한 뭉치의 밥덩어리와 김치 몇 쪽의 충복(充腹)할 식물을 위하여 알면서 행한다 하면 죄인 줄 알면서 타인의 물건을 도적한 기한(飢寒)에 쪼들린 자와 얼마나 나을 것이 있겠읍 니까? 남의 물건을 도적한 자의 양심이 떨린다 하면 그만큼 비례한 저의 양 심도 떨리었을 것이며, 박두하는 기한(飢寒)에 못 이겨 다른 사람의 물건을 도적한 사람의 생(生)을 갈구한 것을 동정할 것이라 하면 생명을 잇기 위하 여 자기의 양심을 속이는 이 A라는 화가도 또한 동정을 구할 수가 있을 것 일는지요?

저는 학교 정문에 들어섰읍니다. 그때 마침 M교주(校主)가 학교를 다녀가 는 길인지 자동차에 오르려 할 때였읍니다. 그때에 그 간사한 이(李) 선생 은 교주의 팔을 부축하여 자동차 속으로 몰아넣었읍니다. 저는 이것을 보고 크게 웃었읍니다. 옆에서 웃는 것을 보는 박 선생은, 『왜 웃으시우?』 하며 눈을 흘기더니, 『그게 무슨 무례한 짓이요?』 하 더이다. 저는 또다시 한번 껄껄 웃으면서, 『박 선생은 나의 웃는 의미를 모르시는구료』 하고, 『인형이외다. 인형 예요. 두 팔 두 다리가 있고도 못 쓰는 인형이외다. 인형은 인형이니까 말 할 것도 없지마는 인형을 부축하는 어리석은 사람을 보고서는 나는 아니 웃 을 수가 없지요』 하고는 그대로 돌아서서 교실 안으로 들어갔읍니다.

오늘은 그믐날이외다. 월급 타는 날이외다. 사무실에 들어선 저는 다만 보 이는 것이 회계의 동정뿐이었읍니다. 그리고 그 돈을 가지고 쓸 궁리를 하 고 있었을 뿐이었읍니다. 오늘도 어린애 모자를 하나 사다 주고 사랑하는 아내의 목도리를 하나 사주어야 하겠다 하였읍니다.

이십 오 원이라는 월급을 기다리는 저의 마음은 웬일인지 씁쓸하고도 저의 몸이 불쌍해 보였읍니다. 그리고 공연히 심증이 났읍니다.

교실에 들어가 분필을 들고서 칠판 위에 그림을 그릴 때에는 모든 학생들 까지 밉살스러울 뿐이었읍니다. 그리고 그 학생들이 저의 운명을 이렇게 만 들어 준 듯하기도 하였읍니다. 저는 마음에 없는 한 시간을 아니 지낼 수가 없었읍니다.

그날은 학생들에게 숙제를 해 오라 한 날이었읍니다. 그 사십 명 학생 중 에 숙제를 해 오지 않은 학생이 다섯이 있었읍니다. 그 중에 나이 적고 옷 을 헐벗은 학생은 제가, 『왜 숙제를 안 해 왔소?』 할 때 그는 다만 아무 말 없이 한참이나 있더 니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자꾸자꾸 울고 섰을 뿐이었읍니다. 다른 애 학 생은 여러 가지 핑계로써 선생인 저를 속이려 하였읍니다. 저는 그 눈물 흘 리는 학생을 바라보고 또다시 다 뚫어진 양말을 볼 때 어쩐지 측은한 생각 이 나서, 『왜 대답은 아니하고 울기만 하시요?』 하며 그의 어깨에 팔을 대니 선생 인 저의 손이 그의 어깨를 어루만지는 것이 더욱 그의 감정을 느지러지게 하였던지 더욱더욱 느끼어 울 뿐이었읍니다. 그러다가는 북받치는 울음소리 와 함께, 『집에서 돈이 없다고 도화지를 사 주지 않아요』 하였읍니다.

선생님! 제가 이 학생을 벌 줄 자격이 있읍니까? 없읍니까? 저는 다만 창 연한 두 눈으로 그 어린 학생을 바라보며, 『여보시오, 참마음만 가지만 그만이요. 나는 당신의 그림 그려 오지 않은 것을 책하려 한 것이 아니라, 당신의 참성의가 없었는가 하는 것을 책하려 함이었소. 당신의 눈물 한 방울은 오늘 그려 오지 못한 그 그림보다 몇 배 의 가치가 있는 것이요』 하였읍니다.

하학 후 사무실로 나왔읍니다. 회계는 나를 보더니 아주 은근한 듯이, 『A선생님, 이리로 좀 오십시오』 하고 자기 곁으로 부르더니 봉투에 집어 넣은 월급을 저의 손에 쥐어 주면서, 『담배값이나 하십시오』 하였읍니다. 저는 그것을 받는 것이 어쩐지 부끄 러웠읍니다. 그래서, 『네, 고맙습니다』하고 그대로 보지도 않고 주머니에다 넣었읍니다.

날은 점점 어두워 가느라고 회색의 저녁빛이 온 시가를 싸고 도는데 저는 학교 문밖에 나와서야 그 봉투를 다시 끄집어내어 그 속에 있는 돈을 꺼내 보았읍니다.

그 속에는 십 칠 원 오십 전, 십 칠 원 오십 전이 들어 있었읍니다. 저는 멈칫 하고 섰읍니다. 그리고, 「어째 십 칠 원 오십 전만 되나?」 하고 한참이나 의아하여 생각을 하고 있을 때에 문득 생각나는 것은 NC의 집 갔었던 것이외다. 아내 잃은 친우를 찾아갔던 일 주일간의 노력의 댓가는 학교에서는 제하여졌읍니다.

아! 선생님, 저의 손에는 십 칠 원 오십 전이 있읍니다. 일 개월 노력한 댓가는 십 칠 원 오십 전이외다. 불쌍한 젊은 화가의 양심을 부끄럽게 한 댓가가 십 칠 원 오십 전이외다.

저는 하는 수 없었읍니다. 회색 봉투에 집어 넣은 그 돈을 들고 SO 집까지 무의식중에 왔읍니다. 하늘의 구름장 사이로는 가리었다 보였다 하는 작은 별들이 이 우스운 젊은 A를 비웃는 듯이 내다보고 있었읍니다. 회색의 감정 이 공연히 저의 마음을 울분하고 원망스럽게 하였읍니다.

SO의 집에는 무엇하러 왔을까요? 그것은 저도 알지 못하였읍니다. 문간에 와서야 내가 무엇하러 여기를 왔나하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려 하였읍니 다. 그러나 저의 가슴에서 때없이 울고 있는 그 무슨 하모니는 저의 발을 SO의 집안으로 끌어들였었읍니다. 그러나 저는 그전과 같이 서슴지 않고 그 대로 들어 갈 수가 없었읍니다. 조그마한 문으로 흘러나오는 무거운 공기는 급히 흐르는 시냇물 같이 저의 가슴으로 몰려오는 듯하였읍니다.

저는 다만 문간에 서서 도둑놈 같이 문 안을 엿듣고 망설였읍니다.

선생님! 사랑도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할 적에는 서슴지 않고 아무 불안 도 없이 다니던 제가 오늘은 어찌하여 죄지은 자 모양으로 들어가기를 주저 하였으며, 가슴이 거북하였을까요?

죄악이 아닌 사랑을 주려 하는데 저는 가슴이 떨림을 깨달았으며, 잘못이 아닌 사랑을 준다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기를 주저하였읍니다.

저는 십 분 동안이나 서 있었읍니다. 그때의 또다시 그 불구자의 모녀의 울 음소리는 그전보다 더 저의 마음을 훑는 듯하고 쪼개는 듯하였읍니다. 그리 고 모든 비애를 저의 가슴위에 실어 놓는 듯이 무겁게 슬펐읍니다. 그러나 저의 눈에는 눈물이 없었읍니다. 학교에서 받은 일 개월 노력의 댓가인 십 칠 원 오십 전이 저를 울분하게 하였음이 공연히 저의 눈물까지 막아 버리 었읍니다. 저는 한참이나 그 울음소리를 들었읍니다. 울음에 섞이어 나오는 늙은 어머니의 떨리는 목소리로 분명치 못하게 들리는 것은, 『SO야, 이제는 그만 한길 귀신이 되었구나』 하고 실히 얼어붙은 듯한 불 쌍한 소리였읍니다.

저는 그제야 그 눈물을 알았읍니다. 불구자의 모녀는 몸을 담을 집이 없읍 니다. 그는 오늘에 몇 푼 안 되는 세전(貰錢)으로 말미암아 집에서 내어쫓 깁니다.

창밖에서 듣고 있는 이 A의 주머니에는 십 칠 원 오십 전이 있읍니다. 이 A는 그래도 한길에서 방황하지는 않겠지요? 저는 그 주머니의 십 칠 원 오 십 전을 꺼냈읍니다. 그리고 연필로 봉투에 A라 썼읍니다. 저는 그 찰나간 에 절대의 동정이 제 가슴속에서 약동하였읍니다. 저의 피를 뜨겁게 힘있게 끓게 하였읍니다.

저는 그 돈을, 문을 소리 없이 가만히 열고 가만히 마루 위에 놓았읍니다.

그리고 절도(窃盜)와 같이 그 문을 떨리는 다리로 얼른 뛰어나왔읍니다. 그 리고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저의 집으로 향하여 갔읍니다.

집에서 아내가 돌아오기를 고대하겠지요. 어린 자식은 아버지 오면 때때모 자를 사다 준다고 몽실몽실한 손을 고개에 괴고 이 젊은 아버지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을 터이지요. 그러나 월급날인 오늘의 저의 주머니는 벌써 한 닢 도 없는 털터리가 되었읍니다. 저의 들어가는 대문소리를 듣고 다른 날보다 더 반가와 맞아 주는 젊은 아내에게 그의 마음을 만족시켜 줄 아무것도 없 읍니다. 어린 자식의 기뻐 뛰는 마음을 도리어 풀이 죽게 할 뿐이겠지요.

그러하오나 어둠 속으로 파고들어 가듯이 암흑한 동리를 걸어가는 이 A의 마음은 웬일인지 만족한 기꺼움이 있었으며 싱싱한 생의 약동이 있었읍니 다. 저는 또다시 MW 사로 왔읍니다. 거기에는 DH와 WC가 웅크리고 앉아서 무슨 책을 보고 있더니 저를 보고서, 『어떻게 되었나?』 하였읍니다. 그것은 저의 월급 말이었읍니다. 저는 모 자를 벗고 구두끈을 끄르면서 기가 막힌 듯이 쓸쓸히 웃으면서, 『흥! 나의 일 개월 동안의 댓가는 참으로 값있게 써 버리었네』 하였읍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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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원문

단편서가에 대하여

영상으로 새롭게 만날 이야기를 찾으며, 한국 단편 문학 260편을 모았습니다.

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마당의 만료저작물을 바탕으로 합니다. 원작의 표현과 옛말을 유지했으며, 읽기 화면에서는 줄바꿈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작품마다 원본 파일과 출처를 함께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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