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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RT STORY

전차 차장의 일기 몇절

나도향 · 약 15분 · 7,185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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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차장의 일기 몇 절

11월 15일 담(曇) …동대문에서 신용산을 향해 아침 첫차를 가지고 떠난 것이 오늘 일의 시 작이었다.

전차가 동구 앞에서 정거를 하려니까 처음으로 승객 두 명이 탔다. 그들은 모두 양복을 입은 신사들인데 몇 달 동안 차장의 익은 눈으로 봐서, 그들이 어젯저녁 밤새도록 명월관에서 질탕히 놀다가 술이 취해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쓰러져 자다 나오는 것을 짐작케 하였다. 새벽이라 날이 몹시 신선할 뿐 아니라 서릿기운 섞인 찬바람이 불어서 트롤리끈을 붙잡을 적마다 고드름을 만지는 것처럼 저리게 찬 기운이 장갑 낀 손에 스며드는 듯하다. 그들은 얼 굴에 앙괭이를 그리고 무슨 부끄러운 곳을 지나가는 사람 모양으로 모자도 눈까지 눌러 쓰고 외투도 코까지 싼 후에 두 어깨는 삐죽 올라섰다. 아직 다 밝지는 않고 먼 동이 터오므로 서쪽 하늘과 동쪽 하늘 두 사이 한복판을 두고서 광명과 암흑이 은연히 양색(兩色)이 졌다. 그러나 눈 오려는 날처럼 북쪽 하늘에는 회색 구름이 북악산 위를 답답하게 막아 놓았다. 운전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너른 길을 규정 외의 마력을 내서 전차를 달려 갔다.

전차는 탑동 공원 앞 정류장에 와서 섰다. 먼 곳에서는 홰를 치며 우는 닭 의 소리가 새벽 서릿바람을 타고서 들려 온다. 그러자 어떠한 여자 하나가 내가 서 있는 바로 차장대 층계위에 어여쁜 발을 올려 놓는 것이 보였다.

아직 탈 사람이 별로 없으리라고 지레짐작에 신호를 하였다가 그것을 보고 서 다시 정지하라는 신호를 하였다. 한 다리가 승강단 위에 병아리 모양으 로 깡총 올라오더니 계란 같이 웅크린 여자가 툭 튀어 올라와서 내 앞을 지 나는데, 머리는 어디서 어떻게 부시대기를 쳤는지 아무렇게나 흩어진 것을 아무렇게나 쪽지고, 본래부터 난잡하게 놀려고 차리고 나섰는지는 알 수 없 으나, 옥양목 저고리에 무슨 치마인지 수수하게 차렸는데 손에는 비단으로 만든 지갑을 들었다. 그리고 그가 내 옆을 지날 때 일본 여자들이 차에 탈 적이나 기생들이 차에 오를 적에 나의 코에 맞히는 분냄새와 향수냄새 같은 향긋한 냄새가 찬바람에 섞이더니 나의 코에 스쳤다.

그 여자는 차 안으로 들어가더니 그 안에 앉아 있는 양복 입은 청년들의 눈을 피하려 함인지 또는 내외를 하려는 것처럼 맨 앞에 가서 앞만 보고 앉 아 있었다. 두 젊은 사람은 어젯저녁에 기생 데리고 놀던 흥이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았는지 그 여자를 보더니 한 사람이 팔꿈치로 옆의 사람을 툭 치 면서 눈을 꿈적하였다. 그러니까 그 사람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끄덕 하며 그 여자만 보고 있었다.

나도 호기심이 일어나서 그 여자 가까이 가서 얼굴이나 똑똑히 보리라 하 고 뒤로 돌려 메었던 가방을 앞으로 돌려서 전차표와 가위를 양손에 갈라 쥐고 차안으로 들어갔다. 우선 두 젊은이에게 표를 찍어 주고서 그 여자 앞 에 가서 손을 내밀려 하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달려들어 이것이 웬일 이요? 할 만큼 놀랐다. 그리고 그의 머리에 꽂힌 금 비녀로부터 발에 신은 비단신까지 모조리 다시 한번 훑어 보았다.

어떻든 표를 찍으려 하니까 자기 지갑에서 돈을 꺼내는데 일 원짜리인지 오원짜리인지 두서너 장 들어 있는 중에서 한 장은 선선히 내놓더니, 『의주통(義州通)이요』 하고 저는 나를 잊어버렸는지 태연하게 앉아 있다. 의주통 바꾸어 타는 표 한 장을 주고 나서 나는 다시 차장대로 나와 섰을 때, 벌써 전차는 화관 앞 을 지나 종로 정류장까지 왔다. 그 여자는 거기서 내리더니 저쪽으로 가 버 리었다. 나는 또다시 남대문을 향하여 돌아가는 전차의 트롤리를 바로잡으 려고 창으로 고개를 내밀었을 때 하늘은 중탁하게 덮이었던 암흑이 점점 뽀 얗게 거두어지며 동쪽에는 제법 붉은 빛이 돌고, 깜빡깜빡하는 별들이 체로 치는 것처럼 굵은 놈만 남고 잔놈들은 없어진다.

나는 공연히 신기한 생각이 들어서 못 견디었다. 그래서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무슨 수수께끼를 풀려는 사람처럼 고개만 기웃하고 있었다. 나는 지나 간 생각을 다시 끄집어내었으니, 그것은 다음과 같다.

한 달 전, 바로 한 달 전에 역시 전차를 몰고서 배우개 정류장에 정거를 하였다. 오후 한 시 가량이나 되었는데 차 안에 승객이라고는 동대문 경찰 서 형사 비슷한 사람 하나와 일본 여자 둘과 또 조선 시골 사람 같은 이가 있을 뿐인데 맨 나중으로 들어온 여자가 있었다.

손에다가는 약병과 약봉지를 들었고, 입은 것은 때가 지지리 끼고 자락이 갈가리 찢어진 데다가 얼굴은 며칠이나 세수를 하지 않았는지 새까맣게 절 었는데, 발은 벗은 채 짚세기 하나만 신었다. 나이는 열 아홉이라면 조금 노성한 편이요, 스물이라면 어디인지 어린 티가 보일 정도다. 속눈썹이 기 름한데 정채 있게 도는 눈이라든지, 보리퉁한 뺨과 둥그스름한 턱, 날카롭 지도 않고 넓적하지도 않는 웬만한 코라든지, 어디로 보든지 밉지 않은 여 자이기는 하지만 주제꼴이 볼썽사나와서 좋은 인상이 없었다. 우리는 항상 하는 예투로, 『표 찍으시오』 하고 손을 내미니까 어리둥절하며 사방을 홰홰 내젓는데, 다시 전차가 달아 나자 그는 어쩔 줄을 모르고 옆엣사람 얼굴 한 번 쳐다보고 밖을 한 번 내 다보고 앉지도 못하고 서지도 못하고 쩔쩔매는 것을 보아하니, 시골서 갓 올라왔거나 당초에 전차 한 번 타 보지도 못한 위인인 것을 알았다. 우리는 항상 그러한 사람이 전차에 오르면 성가시럽다. 왜 그런고 하니 으례 바꾸 어 타야 할 곳에서 바꾸어 타지를 않고는 내릴 때를 지내 놓고 내려서는 귀 찮게 굴기는 우리네 차장에게만이 아니라, 세상에 저밖에 약은 사람이 없는 것처럼 가끔 전차표 오 전을 떼먹으려고 엉터리 없는 바꿔 타는 표를 어디 서 얻어가지고 와서는 속여먹으려고 하기가 일쑤다. 그래서 그런 사람만 만 나면 화증이 나서 목소리가 부락부락해진다.

『어디까지 가시우? 표 내시우! 표요』 하니까 그는 나를 쳐다보더니, 『네? 』 하고 물끄러미 있다.

『네가 무엇이요, 표 내라니까!』 하니까 그는 손에 들었던 종잇조각을 내밀었다. 종잇조각을 받아들고 보니 까, 「명치정 인사소개소(明治町 人事紹介所)」라고 연필로 써 있다.

『이게 무엇이요?』 하고 소리를 꽥 질러 말하니까 그는, 『이리로 가요. 여기가 어디에요? 여기 가서 내려 주세요』 하고 도리어 물어 보며 간청을 한다.

『몰라요, 돈 내요!』 돈이라는 소리에 무슨 짐작을 하였던지, 『없어요』 하고 자기 손을 들여다본 후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숙이다가 그래도 할 말 이 있다는 듯이, 『그런 게 아니라요, 제가 시골서 올라온 지가 한 달이나 되는데 먹을 것 도 없고 입을 것도 없어서 동막(東幕) 어느 집에서 고용살이를 하다가 몸에 병이 나서 병원에 다녀오는데 이것을 써 주며 그리로 가면 된다고 해서 그 리로 가요.』 모든 일은 다 알았다. 총독부 의원 무료 치료실에 갔다가 의사나 병원에 있는 사람이 정상을 가련히 생각하고 인사 상담소를 가르쳐 준 것일 게다.

갓 서울로 올라와서 돈도 없이 차를 탄 것도 사실인데, 어떻든 그때에 나의 마음에서는 알 수 없는 동정심이 나는 동시 마음이 약한 나는 그를 다시 전 차에서 내려 쫓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어찌하면 좋을까 ? 그대로 태우자니 규칙 위반이요, 그렇다고 내려 쫓을 수는 없는데, 하는 생각을 하며 차장대 에 내려섰다가 전차가 황금정(黃芩町)에 왔을 때, 나는 다시 그 앞에 가서 바꾸어 타는 표 한 장을 찍어 주며, 『왜 돈두 없이 전차를 탔소?』 하고 한 번 딱 일러서 법을 가르친 후, 『자 ── 이것을 가지고 요다음 정거하거든 내리우. 이것도 특별히 당신 을 생각하여 주는 것이요. 나는 이것 한 장 당신 준 것이 탄로되면 벌어먹지도 못하고 벌금 물고 그러는 법이요. 그런 줄이나 알아 두시우』 하니까 그는 고맙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오늘 아침에 만난 여자가 바로 그 여자다. 한 달 전에 오전이 없어서 나에 게 은혜를 입던 그 여자가 오늘은 말쑥한 모양꾼이다. 내가 언제든지 여자 로 타고나는 것, 그것이 무한한 보배라고 생각을 하였더니 딴은 그 생각이 들어 맞았다. 여자는 마음 한 번 쓰는 데 당장에 백만장자의 아내가 될 수 있고, 추파를 한 번 보내는 데 여러 남자의 끔찍한 사랑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한 달이라는 세월이 그리 길다고 하지 못할 터인데, 한 달 전에 총독부 무 료 병실에 가서 구차한 말을 하며 병을 봐 달라 하고, 또 나와 같은 차장에 게 까지 은혜를 입던 여자가 오늘엔 어디로 보든지 똑 딴 여염집 부인과 같 다. 우리 같은 사람은 갖은 박대와 모든 수고를 맛볼 대로 맛보며 근근히 번다 해야 한 달에 단돈 몇 십 원을 벌지 못하며, 우리가 참으로 성공을 해 보려면 아까운 젊은 시대를 무참히 간난신고 중에 보내고도 될지 말지 한 일이다.

하루종일 차장대에 섰기도 하며 또는 승객의 표를 찍어 주기도 하는 동안 에 나로서는 말할 수 없고 내가 나이 스물 한 살이 되도록 느껴 보지 못한 감정이 내 몸 전체에 스며드는 듯하였다. 아직까지 나의 젊은 피는 비린내 가 난다. 그 피가 작열(灼熱)을 하지 못하였으며 순화(純化)하고 정화(淨 化)하지 못하였다. 나의 피를 그 무엇에다 사르거나 체질하거나 하여 엑기 스가 되게 하지 못한, 말하자면 아직 진국으로 있는 그것이다. 나는 웬일인 지 오늘 그 여자를 본 후로는 나의 가슴속에 있는 피가 한 귀퉁이에서부터 타오르기를 시작하여 석쇠 위에 염통을 저며 놓고 그것을 들여다보는 듯이 지지 ── 타는 속에서도 무슨 새 생명이 불 위에 떨어져 그 불을 더 일으 키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그 여자는 의주통으로 향하여 가 버리었 다. 그 여자가 의주통으로 갔다고 언제든지 의주통 방면에 풀로 붙인 듯이 있을 것은 아니겠지마는, 내가 전차를 몰아 그곳을 갈 때나 올 때나 또는 옆으로 지날 때, 그를 생각하고 언제든지 그쪽을 향하여 보았다.

11월 17일 청(晴) 나는 어제 하루를 논 후에 오늘은 야근을 하게 되었다. 오늘은 동대문서 청량리를 향하여 떠나게 되었다. 오후 여덟 시나 되어 날이 몹시 추워졌다.

바람도 몹시 불기를 시작하여 먼지가 안개처럼 저쪽 먼 곳으로부터 몰아온 다. 여름이나 봄 가을에는 장안의 풍류남아 쳐놓고 내 손에 전차표를 찍어 보지 않은 사람이 별로이 없을 것이요, 내 손 빌지 않고 차 타지 않은 사람 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일요일은 일요일이지마는 나뭇잎은 어 느덧 환란이 들어서 시름없이 떨어지고 수척한 나무들이 하늘을 뚫을 듯이 우뚝우뚝 솟았는데, 갈가마귀떼들이 보금자리로 돌아간 지도 얼마 되지 않 고 다만 시골의 나무장수와 소몰잇군들의,『어디어 ! 이놈의 소』하는 소리 가 들릴 뿐이다. 탑골 승방, 영도사 또는 청량사 들어가는 어귀는 웬일인지 전보다 더욱 쓸쓸해 보인다.

우리 차는 다시 동대문을 갖다 놓았다. 나가 트롤리를 돌려 대고 다시 차 안에 올라서서 차 떠날 준비를 하려 할 때, 차 안을 들여다보니까 그저께 새벽에 만났던 여자가 그 안에 앉아 있다. 나는 반갑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는 놀랍기도 하여 한참이나 물끄러미 건너다 보고 있었다. 가슴속에서 타기 를 그쳤던 그 피가 다시 한꺼번에 활짝 타오르기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속 으로는, 「얘! 이거 자주 만난다!」 하는 생각이 나면서 웬일인지 차디차게 식은 땀이 뒷잔등이에 솟아오르는 것을 깨달았다.

전차가 떠나기를 시작한 후 전차표를 받으러 속으로 들어갈 때에, 나는 또 다시 그에게 그의 손으로 주는 차표를 받을 생각을 하니까 웬일인지 공연히 마음이 두근두근하여지는 것이 온몸이 확확 달은 듯하였다. 두어 사람의 표 를 찍어 준 뒤에 나는 그 여자 앞에 가서 손을 내밀었다. 그때 나의 생각은 관습적으로 나의 손을 내밀면은 으례 전과 같이 지갑을 열어서 그 속으로부 터 돈을 끄집어내려니 하였었다. 그러면 내 손으로 찍어서 내 손으로 주는 전차표를 그 여자는 가지고 앉아 있다가 그것을 다시 운전수에게 주고 내리 려니 하였다. 그러나 그 여자는 나의 손 내미는 것은 본체만체하였다. 도리 어 성난 사람처럼 암상스러운 얼굴로 딴 곳만 보고 앉았다.

『표 찍으시오』 하고 나는 그에게 주의하기를 재촉하였으나, 그는 역시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다가 나를 한 번 흘끔 쳐다보는 게 어쩐지 거만한 듯하였다. 그러더니 다 시 저쪽 두어 사람이나 격하여 앉아 있는 사람 하나를 고개를 기웃하고 건 너다보았다. 그러니까 그 앉아 있는 사람이 잊어버렸던 것을 깨달은 것처럼 잠깐 놀라는 듯한 표정을 하더니 주머니에서 돈지갑을 꺼내며, 『여기 있소!』 하고 금테안경 너머로 꺼먼 눈동자를 흘기며 나를 불렀다.

「이게 웬 것이냐?」 하는 놀라운 생각이 나며 하는 수 없이 그 남자 편으로 가려 하나 그 여자 를 다른 사람처럼 그대로 본체만체 홱 돌아설 수는 없었다. 나는 다시 한번 그 여자를 훑어본 후 그 남자 ── 금테안경 쓰고 윗수염을 까뭇까뭇하게 기르고 두 눈 가장자리가 푸루뚱하고 콧날이 오똑한 삼십이 넘을락 말락한 사람으로, 얼핏 보면은 미두 시장이 아니면 천냥만냥패 같은 사람 ── 에 게로 가니까 그는 자랑스러운 듯이 지갑 속에서 일 원짜리 한 장을 꺼내어 할인 승차권 하나를 사더니 석 장만 찍으라 하였다. 나는 석 장 찍으라는 소리에 그 옆에 앉아 있는 양복 얌전하게 입고 얼굴이 대리석으로 깎은 듯 한 기리시아(그리스) 타이프 의 청년이 같이 가는 남자인 것을 알게 되었 다.

차표를 다 찍어 주고 차장대에 나와 섰을 때에 웬일인지 그 차표 내주던 남자가 밉고 또는 더럽고 질투성스러워 못 견디었다.

전차가 영도사 들어가는 어귀에 정거를 하자 그들은 거기서 내렸다. 이것 을 보고서 나는 의심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그 차표를 사던 남자가 나의 눈으로 보기에 어째 부랑성(浮浪性)을 띤 듯하였고, 또는 그 눈이나 입 가 장자리가 몹시 음탕하여 보였으며, 그가 그 여자를 데리고 음부탕자(淫婦蕩 子)가 비교적 많이 오는 한적한 절로 들어가는 것이 장차 무슨 음탕한 사실 이 그 속에서 생길 듯하여 공연히 그 남자가 미운 동시에 끌려가는 그 여자 에게 동정이 갔다. 전차 차장의 직업이 그리 귀하지도 못한 것을 나는 안 다. 비교적 얕은 지위에 있어서 어떠한 계급을 물론하고 날마다 그들을 만 나게 되는 동시에 이와 같이 수상스런 사람들을 많이 보지마는 이러한 수상 스러운 남녀를 볼 적이면 공연히 욕도 하고 싶고 그들을 잠깐이라도 몹시 괴롭게 하고 싶은 생각이 나는데, 이번에 본 이 여자로 말하면 처음에 그와 같이 남루한 의복에다가 또 한 푼 없이 나에게 전차표를 얻어 가던 자로서 오늘 와서 나를 대하는 태도가 몹시 거만하고, 또한 작은 은혜나마 은혜를 모르는 것이 가증한 생각이 들기는 들면서도 웬일인지 나의 가슴 가운데 있 는 정서(情緖)를 살살 풀리게 하는 듯하였다. 그래서 그들을 떼어보낼 때 나의 마음은 또다시 섭섭하였다.

12월 15일 청(晴) 오늘 일기는 따뜻한 일기다. 그런데 어저께 나는 우리 동관들에게서 이상 한소문을 하나 들었다. 내가 맨처음 어느 날 새벽에 파고다 공원 정류장에 서 만나던 때와 같이 그 여자가 역시 새벽마다 전차를 타고서 의주통으로 향하여 간다는 말을 들었다. 그 모습과 또는 행동이 여러 사람의 입에서 나 오는 말과 나는 기억으로 내 머리속에 그려 놓은 것이 꼭꼭 들어맞은 까닭 에 그 여자로 인정할 수가 있었다. 나는 이 말을 듣고서 일종의 호기심이 생기어서 나의 당번도 아닌데 남이 가지고 가는 새벽 첫차를 같이 탔다. 그 러고서는 전차가 파고다 공원 앞에 정거를 할 때에 나는 얼핏 바깥을 내다 보았다. 즉시 내가 탄 전차와 상치나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어서 많은 요행을 기대하는 생각으로 그 여자를 만나 보려 할 때 과연 그 여자가 전차 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여자뿐만 아니라 그 옆에는 어떠한 남자 하나가 그 여자의 어깨에 자기 어깨가 닿을 만큼 붙어서서 무슨 이야기인지 정답게 하 는 것을 보았다.

전차에 오르는 여자는 그전에 몸을 차리던 것과 판이하여졌다. 전에는 머 리를 쪽지고 신을 신었더니, 지금 와서는 양(洋) 머리에 구두를 신었다. 그 리고 전에 볼 적에는 몰랐더니 지금에 이 여자를 보고 전에 그 여자를 생각 하니까 전에 있던 시골티와 어색한 것이 모두 없어지고 도리어 무엇엔지 시 달려서 손때가 쪼르르 흐르는 듯하였다. 날이 추우니까 몸에다가는 망토를 입었는데, 쥐었다 펴기도 하고 꼼지락꼼지락하는 손가락에는 한 달 전에 없 던 금반지가 전등불에 비치어 붉은 빛을 반짝반짝 반사한다. 그는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여러번 만나는 것이 신기하다는 듯이 익숙한 눈으로 쳐다보 았다.

그러자 그 남자도 전차를 탔다. 그 남자라고 하는 사람은 한 달 전에 영도 사를 나갈 적에 같이 가던 그 양복 입은 젊은 사람이었다. 영도사를 나갈 적에는 이 젊은 사람이 뒤떨어져서 홀로 비싯비싯 쫓아가는 것을 보았는데 오늘은 자기가 이 여자를 독차지하고서 승자(勝者)의 자랑스러운 모양을 나 타내는것을 볼 수 있었다.

『귀찮아서 죽을 뻔하였어?』 그 여자는 아양이라면 아양, 응석이라면 응석이라고 할 만한 말 소리로 그 남자에게 대하여 이런 말을 하고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왜 진작 오실 일이지 시간이 지나도록 오시지를 않으셨소? 어떻게 기다 렸는지 모르는데…』 남자는 차 안에서 그런 말을 하면은 딴 사람이 들으니 아무 말도 않는 것 이 좋다는 듯이 그 말대답은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 눈치를 챈 여자는 입 을 다물더니 무안한 듯이 고개를 돌이키고 전차가 정거할 정류장의 붉은 등 만 기다리는 듯이 내다보고 있다.

차가 종로에 와 서자 그 두 사람은 일어서 내렸다. 나는 오늘 생각한 바가 있으므로 그들을 따라서 내렸다. 나는 그들이 재판소 앞 정류장을 향하여 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혹시 그들에게 의심을 사지나 않을까 하여 멀찍 이 서 서 뒤를 따랐다. 그들은 사면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기회로 생각하고 서 서로 손목을 잡는 것을 나는 보고서 나의 온몸이 불덩어리 같아지고 내 가 창피한 생각이 났다.

재판소 앞에 가더니 그들은 멈칫하고 섰다. 그리고 무엇이라 무엇이라 하 더 니 다시 그들은 재판소 옆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이번에는 가까이 쫓 아가 보리라 하고서 뒤를 바짝 쫓으매 그들은 내가 따라가는 줄도 모르고서 이야기를 정답게 하면서 갔다.

『오늘 제가요! 그이더러 다시 만나지 않겠다고 해버렸지요. 그러니까 껄 껄 웃으면서 알았다 알았다 하며 얼핏 승락을 하던데요.』 『무엇을 알았다고?』 『당신하고 이렇게 된 것을 말이요.』 『눈치야 챘겠지!』 『그렇지만 그이는 남의 생각은 조금도 해주지를 않아요. 같이 살려면은 할수 없이 너와 나와 깨끗하게 갈라서자고 한다든지, 무슨 말은 없고 그저 질질 끌면서 오늘 낼 오늘 낼 하기만 하니, 어떻게 그런 사람을 바라고 살 아요? 날마다 밤중이면 사람을 끌어다가 새벽이면은 보내면서 한번 바래다 주기를 하나요.』 남자는 아무 말이 없다가, 『우리 집에 가서 몸이나 좀 녹여 가지고 가지….』 『너무 늦으면 어떻게 해요?』 『무얼! 집에 가면 또 무엇을 해? 할 것도 없으면서….』 『할 거야 별로이 없지마는, 너무 자주 가면 딴 방 손님들이라도 이상히 알지 않겠어요?』 『괜찮아! 누군지 아나?』 『왜 몰라요, 눈치를 채지요.』 이렇게 말을 하는 동안에 어느덧 어떠한 여관 앞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그 여관 문 개구멍으로 손을 넣어 고리를 벗기더니 두 사람은 종적을 감추 어 버렸다. 나는 다시 어찌할 수가 없었다. 앞길을 탁 막아 놓은 것 같이 멀거니 서있기만 하였다. 그 여관 속에는 반드시 무슨 수상한 일이 있을 것 을 알았으나 그것을 알 길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멍멍히 돌아올 때 그 집 담 모퉁이를 돌아서려니까, 불이 환하게 비치는 들창 속에서 남자와 여자의 지껄이는 소리가 들리며 미닫이를 닫는 소리가 들리었다. 나는 옳지! 이 방 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귀를 기울여 듣고 있었다. 조금은 아무 말이 없 어서 공연히 나의 가슴이 아슬아슬하여졌다. 그러더니 옷이 몸뚱이에서 미 끄러져 벗어지는 소리가 연하게 들리더니 기침소리 두어 번이 나며 전깃불 이 확 꺼지었다. 나는 모든 것이 더러웠다. 내 가슴속에서 부드럽고 따뜻하 게 타던 모든 것이 그대로 꺼져 버렸다. 옆에 있는 개천에 침을 두어 번 뱉고서 큰길로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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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원문

단편서가에 대하여

영상으로 새롭게 만날 이야기를 찾으며, 한국 단편 문학 260편을 모았습니다.

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마당의 만료저작물을 바탕으로 합니다. 원작의 표현과 옛말을 유지했으며, 읽기 화면에서는 줄바꿈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작품마다 원본 파일과 출처를 함께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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