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RT STORY
금붕어
최서해 · 약 4분 · 1,795자
❧금 붕 어
오늘 아침에는 여느 때보다 한 시간쯤이나 늦게 붕어물을 갈았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여느 때보다 늦게 일어나 세수한 까닭이었다.
“아따, 그놈 잘은 뛴다.”
서방님은 책상 앞에 앉으면서 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호호, 참 잘 노요!”
서방님 곁에 앉은 아씨도 서방님과 같이 어항 속 금붕어를 들여다보았다.
“저놈은 물만 갈아 주면 저 모양이지?”
서방님은 아씨를 은근히 돌아다보았다.
“흥, 히.”
아씨도 마주 보고 상글 웃었다. 잠깐 침묵, 붕어는 굼실굼실 어항 속에서 놀았다.
그 붕어는 서방님과 아씨가 결혼하기 바로 이틀 앞서, 즉 지금부터 한 달 전에 어떤 실없는 친구가 서방님께 사 보낸 것이었다.
‘여보게! 붕어 세 마리 사 보내네. 맏놈, 가운뎃놈, 작은놈, 이렇게 세 마릴세. 맏놈은 누른 바탕에 검은 점 박힌 놈이고 그 다음 두 놈은 새빨간 금붕어일세.’
‘여보게! 자네 자식은 셋을 낳되 맏이로는 아들─맏붕어같이 억세인(검붉 은) 놈을 낳고 그 다음에는 딸들을 낳되 이쁜 년을 낳게 응…… 이게 자네 혼인을 축복하는 표일세.’
이런 글과 같이 붕어 받은 서방님은 결혼 후 그 말을 아씨에게 하고 둘이 웃었다.
처음에는 붕어 물을 서방님이 갈았다. 서방님은 이틀에 한 번 사흘에 한 번 생각나면 물을 갈아 주었다. 열흘이 못 되어서 검붉은 맏붕어가 죽었다.
“아이고! 어쩔 거나? 큰 붕어 죽었시야!”
물 위에 둥둥 힘없이 떠 늘어진 붕어를 본 아씨는 눈이 둥그레서 전라도 사투리로 외쳤다.
“응, 어느 놈이 죽었소?”
마루에서 세수하던 서방님은 양치질물을 쭈르륵 뱉고 머리를 돌렸다. 그때 는 벌써 아씨의 옴팍한 작은 손에 죽은 붕어가 놓여져 서방님 눈앞에 나타 났다.
“응, 큰일났구료 응? 우리 맏아들 죽었구료? 허허.”
“이잉 또 구성없네! 누가 아들이 호호.”
아씨는 낯이 발개서 마루 안에서 숯불 피우는 할멈을 보고 다시 서방님을 힐끗 보더니 그만 상글상글 웃었다. 할멈도 웃었다.
그뒤부터는 아씨가 붕어에게 물을 갈아 주었다. 서방님이 게을리 갈아 주 어서 붕어가 죽었다고 아씨는 매일 갈아 주었다. 오늘도 아씨가 물을 갈았 다.
“여보! 저놈은 뭣을 먹고 사는고 잉?”
팔락팔락하는 붕어 입을 보던 아씨는 상글 웃고 서방님 어깨에 손을 얹었 다.
“글쎄 뭘 먹는고?”
빙그레 웃는 서방님은 도리어 아씨에게 묻는 어조였다.
“우리 밥을 줘 볼까? 잉…… 여보……잉.”
아씨는 어서 대답하라는 듯이 서방님 어깨를 흔들면서 어리광 비슷하게 말 했다.
“밥!”
“잉 밥!”
“당신이 밥 먹으니 그놈도 밥 먹는 줄 아우? 붕어는 양반이 돼서 밥 안 먹는다오!”
서방님은 시치미를 뚝 떼고 천역덕스럽게 말했다.
“이잉 구성없네! 잉 ……. 어디 어디 당신은 밥 안 잡수? 히힝 잉.”
아씨는 웃음 절반 트집 절반으로 서방님 넓적다리를 꼬집었다.
“아야! 익 이크 하하.”
“호호호…….”
서방님은 아씨 손을 쥐면서 꽁무니를 뺐다. 아씨는 더 다가앉았다.
“여보 여보 여보 여보! 저것 보! 저것 봐요!”
서방님은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 아씨는 꼬집던 손을 멈췼다. 그러나 놀 라는 빛은 없었다. 그런 소리에는 속지 않는다는 수작이었다.
“이잉, 무엇을 보라고 또 구성없네.”
“응, 저것 봐, 저거저거 저것 봐요!”
서방님은 책상 위 어항을 입으로 가리키면서 아씨 허리를 안았다.
“그게 뭣이라요?”
“아씨도 머리를 돌렸다.
“참 잘 논다. 무어 기뻐서 저렇게 잘 노누?”
큰일이나 난 듯이 바쁜 소리를 치던 서방님은 신기한 것─붕어 놀이─에 정신을 뽑힌 듯이 감탄하는 소리였다. 두 손으로 서방님의 무릎을 짚고 서 방님께 소곳이 안겨서 붕어를 보는 아씨의 눈에서는 소리 없는 웃음이 솔솔 흘렀다. 반 남아 열어 놓은 창으로 아침볕이 흘러들었다. 봄 아침 좀 서늘 한 바람과 같이 흘러드는 맑은 볕은 다정스럽고 따분스럽게 어항을 비추고 두 남녀의 몸을 비추었다. 만개된 장미같은 붉은 선에 주름잡은 아가리 아 래 동그스름한 어항에는 맑은 물이 느긋이 찼다. 하나는 치 남짓하고 하나 는 그만 못한 금붕어 두 마리가 그 속에 잠겼다. 큰놈은 연한 꼬리를 휘저 었고 흰 배를 희뜩희뜩 보이면서 빙빙 돈다. 급히 돈다. 작은놈은 가운데서 아주 태연하게 지느러미를 너불너불하면서 오르락내리락한다. 두 놈이 몸을 번지고 흔들 때마다 물속에 스며 흐르는 볕에 금빛이 유난스럽게 번득거렸 다. 두 놈이 셋 넷도 돼 보이고 큰 잉어같이 뵈는 때도 있다. 밑에 가라앉 았다가 위에 스스로 솟아올라 구슬 같은 물방울을 꼬록꼬록 토하면서 물과 공기를 아울러 마시는 소리는 시계가 치는 듯도 하고 고요한 밤 고요히 떨 어지는 낙수물 소리도 같다. 안고 안긴 두 부부는 고요히 그것을 보고 들었 다. 두 부부의 낯에는 같이 소리 없는 웃음이 흘렀다. 이 찰나 그네는 지난 엿새 동안 모든 괴로움을 다 잊었다. 앞으로 헤저어 나갈 길도 생각지 못하 였다. 두 몸이라는 것까지 잊었다. 주위에 흐르는 햇빛까지 기쁨의 찬미를 드리는 듯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