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RT STORY
옛날 꿈은 창백하더이다
나도향 · 약 22분 · 10,838자
❧옛날 꿈은 창백하더이다
나도향 내가 열두 살 되던 어떠한 가을이었다. 근 오 리나 되는 학교에를 다녀온 나는 책보를 내던 지고 두루마기를 벗고 뒷동산 감나무 밑으로 달음질하여 올라갔다.
쓸쓸스러운 붉은 감잎이 죽어 가는 생물처럼 여기저기 휘둘러서 휘날릴 때 말없이 오는 가 을 바람이 따뜻한 나의 가슴을 간지르고 지나가매, 나도 모르는 쓸쓸한 비애가 나의 두 눈 을 공연히 울고 싶게 하였다. 이웃집 감나무에서 감 따는 늙은이가 나뭇가지를 흔들 때마 다 떼지어 구경하는 떠꺼머리 아이들과 나이 어린 처녀들의 침 삼키는 고개들이 일제히 위 로 향하여지며 붉고 연한 커다란 연감이 힘없이 떨어진다.
음습한 땅 냄새가 저녁 연기와 함께 온 마을을 물들이고 구슬픈 갈가마귀 소리 서편 숲속 에서 났다. 울타리 바깥 콩나물 우물에서는 저녁 콩나물에 물 주는 소리가 척척하게 들릴 적에 촌녀의 행주치마 두른 짚세기 걸음이 물동이와 달음박질한다.
나는 날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로 하는 것이라고는 이것이 첫째 번 과목이다. 공연히 뒷동산으로 왔다갔다한다.
그날도 감나무 동산에서 반숙한 연감 하나를 따먹고서 배추밭 무밭 틈으로 돌아다녔다. 지 렁이 똥이 몽글몽글하게 올라온 습기 있는 밭이랑과 고양이밥이 나 있는 빈 터전을 쓸데없 이 돌아다닐 때 건너편 철도 연변에 서 있는 전깃불이 어느틈에 반짝반짝한다.
그때에 징신 신은 나의 아우가 뒷문에 나서면서 부엌에서 밥투정을 하다 나왔는지 열 손가 락과 입 가장자리에는 밥알투성이를 하여 가지고 딴사람은 건드리지도 못하는 저의 백동 숟가락을 거꾸로 들고 서서, “언니, 밥 먹으래.”
하고 내가 바라보고 서 있는 곳을 덩달아 쳐다본다.
“그래.”
하고 대답을 한 나는 아무 소리도 없이 마루 끝에 가 앉으며 차려 논 밥상을 한 귀퉁이 점 령하였다. 밥 먹는 이라고는 우리 어머니와 일해 주는 마누라와 나와 나의 다섯 살 먹은 아 우뿐이다.
소학교 4학년을 다니는 내가 무엇을 알며 무엇을 감득할 능력을 가졌으며 안다 하면 얼마 나 알고 감득하면 몇 푼 어치나 감득하리요. 그러나 웬일인지 그때부터 나의 어린 마음은 공연히 쓸쓸하고 우울하여졌다. 나뭇가지 하나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나, 저녁 참새가 처 마끝에서 옹송그리고 재재거리는 것이나, 한가한 오계(午鷄)가 길게 목늘여 우는 것이나, 하늘 위에 솟는 별이 종알거리는 것이나, 저녁 달이 눈〔雪〕위에 차디차게 비추인 것이 나, 차르럭거리며 흐르는 냇물이나, 더구나 나무 잎사귀와 채소 잎사귀에 얼킨 백로(白露) 의 뻔지르하게 흐르는 것이 왜 그리 그 어린 나의 감정을 창백한 감상의 와중으로 처틀어 박는지 약한 심정과 연한 감정은 공연한 비애 중에서 때 없는 눈물을 흘리었었다.
그것을 시상의 발아라 할는지 현묘유원(玄妙幽遠)한 그 무슨 경역(境域)을 동경하는 첫째 번 동구(洞口)일는지는 알지 못하겠으나 어떻든 나는 다른 이의 어린 때와 다른 생애의 일 절을 밟아 왔다. 그러나 그것은 몽롱한 과거이며 흐릿한 기억이다.
그날 저녁에도 어둠침침한 마루 끝에서 갓 지은 밥을 한숟가락 두 숟가락 퍼먹을 때에 공 연히 쓸쓸하고 적적하다. 어렴풋한 연기 냄새가 더구나 마음을 괴롭게 한다. 침묵이 침묵 을 낳고 침묵이 침묵을 이어 침침한 저녁을 더 어둡게 할 때 나는 웬일인지 간지럽게 그 침 묵이 싫었다. 더구나 초가집 처마끝에서 이리 얽고 저리 얽어 놓은 왕거미 한 마리가 어느 덧 나의 눈에 뜨일 때에 나는 공연히 으쓱하여 무엇을 생각하시는지 입에 든 밥만 씹고 계 신 우리 어머니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리고 코를 손등으로 씻어 가며 손가락으로 반찬을 집어 먹는 나의 아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할멈, 물 좀 떠오게.”
하는 소리가 우리 어머니 입에서 떨어지며 그 흉한 침묵이 깨지었다. 할멈은 행주치맛자락 에 손을 씻으며 대접을 들고 부엌으로 내려가더니 솥뚜껑 소리가 한번 덜컹 하고 숭늉 한 그릇을 들고 나온다. 어머니는 아무 소리 없이 그 물을 나에게다 내미시면서, “물 말어 먹으련.”
하시니까 물어 보신 나의 대답은 나오기도 전에 나의 동생이 어리광부리는 그 소리로, “물.”
하고 물그릇을 가로채 간다.
“엎질러진다. 언니 먹거든 먹거라.”
하시는 어머니의 권고는 아무 효력이 없이 왈칵 잡아당기는 물그릇은 출렁 하더니 내 동생 바지 위에 들어부었다. 그 일 찰나간에 우리 네 사람은 일제히 물러앉으며, “에그.”
하였다. 어머니는, “걸레, 걸레.”
하며 할멈에게 손을 내미신다.
“글쎄 천천히 먹으면 어때서 그렇게 발광이냐.”
하시며 상을 찌푸리시고 할멈이 집어 주는 걸레를 집어 나의 아우의 바지 앞을 털어 주신 다. 때가 묻은 바지 앞을 엉거주춤하고 내밀고 있는 나의 아우는 다만 두 팔만 벌리고 서서 아무 말이 없다.
나는 미안하여 그리하였던지 동생의 철없이 날뛰는 것이 우스워 그리하였던지 밥은 먹지 못하고 다만 상에서 저만큼 떨어져 앉았다가 석유등잔에 불만 켜놓고서 다시 밥상으로 가 까이 올 때, “에그, 다리 아퍼. 저녁을 인제야 먹니?”
하며 마당으로 들어오는 이는 우리 동생 할머니시다. 손에는 남으로 만든 책보를 들고 발 에는 구두를 신고 머리를 쪽찐 데는 은비녀를 꽂았다. 키가 작달막한데다 머리가 희끗희끗 한데 검정 치마가 땅에 거의 거의 끌리게 된 것을 보니까 아마 오늘도 꽤 많이 돌아다니신 모양이다.
“어서 오십시오.”
하며 들던 숟가락을 놓고 일어나시는 이는 우리 어머니시다.
“마님 오십니까.”
하고 짚세기를 신는 이는 할멈이다. 마루창이 뚫어져라 겅둥겅둥 뛰며, “할머니 할머니.”
를 부르는 것은 나의 아우다. 나는 숟가락을 입에 문 채로 다만 빙그레 웃으면서 반가워하 였다.
마루 끝에 할머니는 걸터앉으셨다. 할멈은 걸레로 마룻바닥을 훔치는 사이에 어머니는 부 엌으로 내려가셨다. 그릇 소리가 덜거덕덜거덕 난다. 피곤한 가슴을 힘없이 내려앉히시며 한숨을 휘― 하고 내쉬신 할머니는 무슨 걱정이나 있는 듯이 부엌을 향하며, “고만두어라, 내 밥은. 아직 먹고 싶지 않다.”
하신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상을 차리시더니, “왜 그러세요. 조금 잡숫지요.”
“아니다, 저기서 먹었다. 오늘 교인 심방을 하느라고 이리저리 다니다가 명철(明哲)의 집 에를 갔더니 국수장국을 끌여 내서 한 그릇 먹었더니 아직까지도 배가 부르다.”
어머니는 차리던 상을 그대로 놓고 부엌문에서 나오며, “명철이 집이요, 그래 그 어머니가 편찮다더니 괜찮아요?”
“응, 인제는 다 낫더라. 그것도 하느님 은혜로 나은 것이지.”
우리 할머니는 그 동네 교회 전도부인이다. 우리 집안은 본래 우리 할아버지와 우리 아버 지 사이가 좋지 못하여 따로따로 떨어져 산다. 그리고 우리 할머니는 열심 있는 교인이요 진실한 신자이지마는, 우리 아버지는 종교(현대사회에서 명칭하는)에 대하여 냉혹한 비평 을 하는 사람이었다.
우리 할머니는 본래 교육이 있지 못하다. 있다 하면 구식 가정에서 유교의 전통을 받아 오 는 교육이었을 것이며, 안다 하면 한문이나 국문 몇 자를 짐작할 뿐이요, 새로운 사조와 근 대사상이라는 옮기기도 어려운 문자가 있는지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열두 살 되던 그해에는 다만 우리 할머니를 한개 예수 믿는 여성으로 알았 었으며, 하느님이 부리는 따님으로만 알았었다. 종교에 대한 견해라든지 신앙이란 여하한 것인지를 알지 못하였다.
나도 예수교 학교를 다니므로 자기의 선생을 절대로 신임하고 자기의 학교의 교풍을 절대 로 존중하였었다. 그리고 예수의 십자가에 흘렸던 붉은 피가 참으로 우리 인생의 더러운 죄를 씻었으며 수염 많은 할아버지 같은 하느님이 참으로 우리를 내려다보시고 계신 줄 알 았었다.
날마다 아침 성경시간과 주일학교에서 선생에게 들은 바가 참으로 나의 눈앞에 환상으로 나타났었으며 유대 풍속을 그린 성화가 과연 천당, 지옥, 성지, 낙토의 전형으로 보이었었 다. 그것이 나에게 어떻든 무슨 인상을 준 것은 사실이니, 천사를 생각할 때에는 반드시 서 양여자를 그린 그 채색 칠한 그림이 나의 눈앞에 나타나 보이며,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간 것을 생각할 때에는 시뻘건 육괴(肉塊)가 시안(屍眼)을 부릅뜨고 초민(焦悶)과 고 통의 극도를 상징하는 그의 표정과 비린내 나고 차디찬 피가 흐르는 예수의 죽음이 만인의 입과 천년의 세월을 두고 성찬성찬하며 추앙 경모의 그 부르짖음의 소리가 그 어린 나의 귀와 나의 심안에 닿을 때에도 그것은 고통으로 보이지 않았으며 초민으로 보이지 않았으 며 비린내 나는 붉은 피 보혈로 보이었으니 무서운 시체를 그린 그 그림이 도리어 나의 어 린 핏결 속에 무슨 신앙을 부어 주었었다. 그때의 나의 기도는 하느님이 들었으며 그때의 나의 죄는 예수가 씻었었다. 그것이 결코 지금의 나를 만족시키며 지금 나에게 과연 신앙 을 부어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내가 열두 살 되는 그때의 나의 영혼은 있는지 없는지도 판단치 못하던 하느님이 지배하였었으며 이천 년 옛날에 송장이 되어 썩어진 예수가 차지 하였었다. 그때의 나의 영혼은 나의 영혼이 아니고 공명(空名)의 하느님의 것이었으며 그 때의 나의 생은 나의 생이 아니며 촉루(髑髏까지 없어진 예수의 생이었다. 그때의 나는 약 자이었으며 그때의 나는 피정복자이었다. 무궁한 우주와 조화를 잃은 자이었으며 명명(暝 暝) 무한대한 대세계에 나의 생을 실현할 능력을 빼앗긴 자이었다.
명명한 대공(大空)을 바라볼 때에 유대식 건물의 천당을 동경하였을지라도 자아심상(自我 心床) 위의 낙토는 몰랐으며 사후의 영생은 구하였을지라도 생하여서 영생을 알지 못하였 다. 사(死)는 생의 척도됨을 알지 못하고 생이 도리어 사후의 희생으로 알았었다.
산상(山上)의 교훈과 포도동산의 교훈을 듣기는 들었으나 열두 살 먹은 나의 호기심을 끌 기에 너무 현묘하였으며 애(愛)의 복음과 자아의 희생을 역설함을 듣기는 들었으나 나에게 과연 심각한 감화를 주지는 못하였었다. 성경의 해석은 일종 신화로 나의 귀에 들렸으나 그 무슨 신앙을 주었으며 성화를 그린 종잇조각은 한개 완구가 되었으나 빼기 어려운 우상 을 나의 심전(心殿)에 그리어 주었다.
아아, 나는 물으려 한다. 하느님의 사자로 자처하고 교회의 일꾼으로 자임하는 우리 할머 니의 그때의 내면적이나 외면적을 불문하고 열두 살밖에 되지 않은 나의 그것과 얼마나 틀 린 점이 있었으며 얼마나 나은 점이 있었을는지? 그는 과연 예수의 성훈을 날것대로 삼키 는 자가 되지 않고 조리하고 익히며 그의 완전한 미각으로 그것을 저작(咀嚼)할 줄을 알았 을까? 그는 참으로 예수의 정신을, 그의 내적 생활을 체득한 자이었을까?
그는 과연 여하한 신앙으로써 생으로 생까지를 살아갔었으며 그는 참으로 어떠한 영감을 예수교에서 감득하였을까? 나는 다만 커다란 의문표를 안 그릴 수가 없다.
그날도 우리 할머니는 여자의 몸의 피곤함을 깨달으면서도 무슨 만족함이 그의 얼굴을 싸 고도는 듯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아 이외에 우리 어머니나 할멈이나 내나 나의 동생 을 일개의 죄인시하는 곳에 가련함을 견디지 못하는 듯한 표정이 그의 시들어 가는 입 가 장자리와 가느다란 눈초리에 희미하게 얽히어 있었다. 할머니는 조금 있다가 눈살을 잠깐 찌푸리시더니, “큰일났어! 예배당에 돈을 좀 가져가야 할 텐데 돈이 있어야지. 다른 사람과 달라서 아니 낼 수도 없고, 또 조금 내자니 우리집을 그래도 남들이 밥술이나 먹는 줄 아는데 그렇게 할 수도 없고, 이런 말씀을 아버지께 여쭈면 공연히 역정만 내시니까!”
하며 우리 어머니에게 향하여 걱정을 꺼낸다.
“요사이 날이 점점 추워져서 시탄비(柴炭費)를 내야 할 터인데 김부인은 벌써 오 원을 적 었단다. 그이는 정말 말이지 살어가기가 우리집에다 대면 말할 것도 없지 않으냐. 그런데 아버지께 그런 말씀을 하니까 역정을 내시면서 남이 죽으면 따라 죽느냐고 야단을 치시면 서 돈 일 원을 주시는구나. 그러니 얘, 글쎄 생각을 해보아라. 어떻게 일원을 내니! 내 속이 상해 똑 죽겠어.”
하며, “그래서 하는 수가 있더냐, 명철이 집에 가서 돈 오 원을 지금 꾸어 가지고 오는 길이란다.
” 하며 차곡차곡 접어 쥔 일 원 지폐 다섯 장을 펴보인다. 우리 어머니는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이 가만히 듣고만 있다가, “그러면 그것은 어떻게 갚으십니까?”
하며 빈곤한 생활에 젖은 우리 어머니는 그 갚는 것이 첫째 문제로 그의 가슴을 거북하게 하였다.
“글쎄 그거야 어떻게든지 갚게 되겠지? 하다못해 전당을 잡혀서라도.”
하더니, “에그, 인제는 고만 가보아야지.”
하며 벌떡 일어서서 나가려 하다가, “애 아범은 여태까지 안 들어왔니?”
한마디를 남겨 놓고 바깥으로 나간다. 우리 어머니는 다만, “네, 언제든지 그렇게 늦는답니다.”
하며 걱정스러운 듯이 문 밖으로 할머니를 쫓아 나간다.
우리 어머니는 아슬랑아슬랑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는 우리 할머니의 뒤 그림자가 사라져 없어져 가는 것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 할머니의 검은 그림자가 다 사라진 뒤에 도 여전히 그 할머니의 그림자가 사라져 없어진 곳에서 무엇을 찾는 듯이 바라보고 서 있 다. 모든 것이 검기만 한 어두운 밤이다. 나도 나의 동생을 등에 업고 어머니를 쫓아 문 밖 에 서 있었다. 어머니는 소매 걷은 두 팔을 가슴에 팔짱을 지르고 허리를 꾸부정하고 서서 근심스러운 듯이 저쪽 길만 바라보고 서 계시다.
고생살이에 다 썩은 얼굴은 웬일인지 나도 쳐다보기가 싫게 화기가 적다. 머리카락이 이마 를 덮은 그의 두 눈은 공연히 쳐다보는 나를 울고 싶게 하였다. 때묻은 행주치마와 다 떨어 진 짚세기가 더욱 나를 부끄럽게 하였다.
하얀 두루마기가 바라보는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휘날릴 때마다 우리 어머니는 옆에 서 있 는 나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아버진가 보다.”
하며 나에게 무슨 동의를 청하시는 것처럼 바라보신다. 그러나 그 흰 두루마기가 우리집으 로 향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지나쳐 버릴 때는 우리 어머니와 나는 섭섭한 웃음을 웃었다.
문간에 서서 아무 말 없이 늦게 돌아오시는 우리 아버지를 기다리는 우리는 한 시간이 넘 도록 서 있었다. 나의 어린 아우는 등에다 고개를 대고 코를 골며 잔다. 이마를 나의 등에 다 대고 허리를 새우등같이 꾸부리고 자다가는 옆으로 떨어질 듯하면 반드시 한 번씩 놀란 다. 놀랄 그때 나는 깍지 낀 손을 다시 단단히 쥐고 주춤 하고 한번씩 다시 추키었다. 한 시 간을 기다려도 아버지는 돌아오시지 않았다. 어머니는 힘없고 낙망한 소리로, “문 닫고 들어가자!”
하시며 “에그, 어린애가 자는구나. 갖다 뉘어라.”
하시며 대문을 벌컥 닫고 들어오신다. 문 닫는 소리가 어쩐지 쓸쓸하고 적적하다. 우리집 공중을 싸고도는 공기의 파동은 연색(沿色)의 파문을 그리는 듯이 동적이 아니며 정적이었 으며 양기가 없고 음기뿐이었다. 회색 칠한 침묵과 갈색의 암흑이 이귀퉁이 저귀퉁이에서 요사한 선무를 추고 있었다.
나는 그때에 무엇을 감각하였으며 무엇을 감득하였을까? 회색 침묵과 아득한 암흑이 조화 를 잃고 선율이 없이 때없는 쓸쓸한 바람과 섞이어 시름없이 우리집 전체의 으스스한 공기 를 휩싸고 돌아 나갈 때 나의 감정을 푸른 감상과 서늘한 감정으로 물들여 주었었다. 마루 끝까지 올라선 나의 눈에 비친 찬장이나 뒤주나 그 외의 모든 기구가 여러 가지 요마(妖魔) 의 화물(化物)같이 보일 때에 나의 가슴은 더욱 서늘하여졌었다. 다만 나무 잎사귀가 나무 끝에서 바스락 하는 것일지라도 나를 방 안으로 뛰어들어가도록 무서웁게 하였다. 어머니 가 등잔불을 떼어 들고 나의 뒤를 쫓아 들어오실 때에 그 불에 비친 나의 어두운 그림자가 저쪽 담벼락에서 어른어른하는 것까지 나의 머리끝을 으쓱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 정숙과 공포가 얽힌 나의 심정을 풀어 주고 녹여 주는 것은 나의 뒤에 서 있는 애(愛)의 신 같은 우리 어머니의 부드러운 사랑의 힘이었다. 그것은 나의 신앙의 전부였으 며 나의 앞길을 무한한 저 앞길로 인도하는 구리기둥이었다. 베드로가 예수를 보고 갈릴리 바다로 걸어감과 같이 이 세상 모든 것을 초월5케 하는 최대의 노력이었다. 등잔불의 기름 이었으며 쇠북을 두드리는 방망이였다.
방으로 들어온 나는 아랫목에 자리를 펴고 누워서 복습을 하였다. 본래 공부를 하지 않는 나는 내일에 선생에게 꾸지람이나 듣지 않으려고 산술 숙제 두어 문제를 하는 척하여 다른 종이에 옮기어 베끼고 쓰기 싫은 습자는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쓰기로 하였다. 나의 동생 은 발길로 나의 허리를 지르면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이리 뛰굴 저리 뛰굴, 남의 덮은 이 불을 함부로 끌어다가 저도 덮지 않고서 발치에다 밀어 던진다. 그리고는 힘있는 콧김을 길게 내쉬며 곤하게 잔다. 우리 어머니는 등잔 밑에서 바느질을 하시며 눈만 깜박깜박하신 다. 할멈은 발치에서 고단한 눈을 잠깐 붙이었다.
나는 방 안이라는 조그마한 세계에서 네 개의 동물이 제각각 다른 상태로 생을 계속하는 가운데 남의 걱정과 남의 근심을 알 줄을 몰랐었다. 우리 어머니의 머릿속에는 과연 어떠 한 심리상태의 활동사진이 그의 뇌막에 비치었으며 늙은 할멈은 어떠한 몽중세계에서 고 생살이 잠꼬대를 할는지 알지 못하였다. 어린 아우의 단순한 머릿속에도 무서운 호랑이와 동리집 아이의 부러운 장난감을 꿈꾸는 줄은 알지 못하였다. 따뜻한 이불 속에서 두 발을 문지르며 편안히 누웠으니 몇십분 전 가득하던 감정이 이제는 어디로인지 다 달아나고 모 든 것이 한가하고 모든 것이 평화롭고 모든 것이 노곤한 감몽(甘夢)을 유인하는 것뿐이었 다. 인제는 어느틈에 올는지 알지 못하는 달콤한 잠을 기다릴 뿐이었다. 불그레한 등불 밑 에 앉아서 바느질하시는 어머니의 머릿속에 있는 늦게 돌아오시는 아버지를 기다리시는 초민과 지나간 일을 시간의 얽히었다 풀리었다 하는 기억과 연상과 기대와 동경의 엉클어 진 심리는 알지 못하고 다만 재미있는지 기쁜지 으레 그래야 할 것인지 알지 못하는 무의 식의 연장선이 나의 전신을 거미줄 얽듯 얽기를 시작하더니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잠이 들었다.
어느 때가 되었는지 알지 못하게 든 잠이 마려운 오줌으로 인하여 어렴풋하게 깨었을 때이 었다. 이불을 들치고 엉거주춤 일어선 나의 귀에는 지껄지껄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더 니 등잔불에 부신 두 눈 사이로 우리 아버지의 희미한 윤곽이 보였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아버지!”
하였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는 젓가락으로 앞에 놓여 있는 반찬을 뒤적뒤적하시면서 나를 냉담한 눈으로 멀거니 쳐다보시기만 하시더니 무슨 불만한 점이 계신지 노여운 어조로, “아버진지 무엇인지 다 귀찮다. 어서 잠이나 자거라.”
하시고는 다시 본 척 만 척하시고 반찬 한 젓가락을 입에다 넣으신다. 나는 얼굴이 홧홧하 여지도록 무참하였다. 나는 죄지은 사람같이 양심에 무슨 부끄러움이 나의 아버지를 쳐다 보지 못하게 하였다. 숙몽(熟夢)에 취하였던 나의 혼몽한 정신은 한꺼번에 깨어지며 뻣뻣 하던 두 눈은 기름을 부은 듯이 또렷또렷하여졌다. 그때야 나는 우리 아버지의 붉은 얼굴 을 보고 술취하신 줄을 알았다.
어머니는 무참해하고 무서워하는 나의 꼴을 보시고 아버지를 흘겨 쳐다보시며, “어린 자식이 반가워하는 것을 그렇게 말을 하니 좀 무참해하겠소. 어린애들에겔지라도 좋 은 말 할 적은 한 번도 없지.”
하시다가 다시 나를 향하시어 혼자말 비슷하고 또는 누구더러 들어 보란 듯이, “너희들만 불쌍하니라. 아버지라고 믿었다가는 좋지 못한 꼴만 볼터이니까.”
하시며 두 눈을 아래로 깔고 방바닥을 걸레로 훔치시는 체하신다.
나는 드러눕지도 못하고 일어나지도 못하였다. 드러눕자니 아버지 진지 잡숫는 데 불경이 될 터이요, 그대로 앉아 있자니 자다가 일어난 몸이 추운 가운데 공연히 무서워서 몸이 떨 린다. 이런 때에는 나의 어머니가 변호인이요 비호자임을 다소간의 지낸 경험으로 알고 또 는 사람의 본능으로 모성의 자애를 신임하는 나는 우리 어머니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때 마침 어머니는, “어서 누워 자거라. 아버지 진지도 거의 다 잡수셨으니.”
하셨다. 나의 마음은 얼었던 것이 녹는 듯이 아주 좋았다. 나는 못 이기는 체하고 곁눈으로 아버지의 눈치만 보며 이불자락을 들었다. 그리고는 눈 딱 감고 이불을 귀까지 푹 덮고 그 대로 드러누웠다. 그러나 잠은 어디로 달아나 버렸는지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자는 척하 지마는 마음은 조마조마하여 못 견딜 지경이었다.
아버지는 숟가락을 탁 집어 상 위에 내던지시며, “엥, 내가 없어야 해. 없어야 해.”
를 두서너 번 중얼거리시더니, “그래 자기 자식은 굶든지 죽든지 상관하지를 않고 예배당인지 무엇인지 거기에다간 빚을 얻어다가 주어야 해?”
하시며 옆으로 물러앉으시니까, 어머니는, “누가 알우? 왜 그런 화풀이는 내게다 하우.”
하시는 소리가 떨어지기도 전에, “무엇, 흥, 기가 막혀. 그래 예수가 무엇이고 십자가가 무엇이야. 예배당에 다니네 하고 구 두만 신고 다니면 제일인가? 왜 구두를 신어! 그 머리가 허연 이가 구두짝을 신고 돌아다니 는 꼴이라니. 활동사진 박을 만하지. 예수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알기들이나 한다나? 그 사 생아를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그러나 예수가 나쁜 사람은 아니지. 좋은 사람이지. 참 성인 은 성인이야! 그렇지만 소위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라는 그 사람을 믿었지, 예수가 부르 짖은 그 하느님은 믿지 못하였어! 하느님은 이 세상 아니 계신 곳이 없지! 누구에게든지 하 느님은 계신 것이야! 다 각각 자기 마음속에 하느님이 계신 것이야! 여편네들이 무엇을 알 어야지. 내가 이렇게 떠들면 술 먹고 술주정으로만 알렷다! 흥, 우이독경이야! 기막히지!
여보, 무엇을 알우? 그런 늙은이가 무엇을 알어. 그래 신앙이 무엇인지 참종교가 무엇인지 를 알어! 예수, 예수 하고 아주 기도를 하고! 그것은 다 약자의 짓이야. 사람은 강자가 되어 야 해!”
우리 어머니는 듣고만 계시다가, “듣기 싫소. 웬 잔말이오! 그런 말을 하려거든 어머니나 아버지한테 가서 하구려.”
하시며 상을 들고 나가려고 하시니까, 아버지는, “무엇이야, 듣기 싫다구?”
하시더니 어머니의 치마를 홱 잡아당기시는 김에 치마가 북 하고 찢어졌다. 어머니는 상을 할멈에게 주고 찢어진 치마를 들여다보시며 얼굴이 빨개지신다. 여자인 어머니는 의복의 파손이 얼마큼 아까운지 모르시는 모양이다. 치마폭이 찢어지는 그 예리한 소리와 함께 우 리 어머니의 신경은 뾰족한 바늘 끝으로 쪽 내리베는 것같이 날카로웁고 쓰린 자극을 받으 신 모양이다.
“이게 무슨 짓이오. 여편네 옷을 찢지 못하면 말을 못 하오? 그래 무슨 말이오. 어디 말을 좀 해보우. 어쩌자고 이러시우. 날마다 늦게 술이나 취하여 가지고 만만한 여편네만 못살 게 구니 참으로 사람 죽겠구려! 무슨 말이오! 할 말 있거든 어서 하시오!”
흥분된 어조를 조금 높이신 까닭에 높은 음성은 또 우리 아버지를 흥분시키는 동시에 노여 웁게 하였다.
“말을 하라구? 흥, 남편 된 사람이 옷을 좀 찢었기로 무엇이 어쩌고 어째?”
“글쎄 내가 무엇이라고 했소, 내가 무슨 죄요. 참으로 허구한 날 사람이 살 수가 없구려.”
“듣기 싫어. 여편네들이 무엇을 알아야지. 남편의 심리를 몰라주는 여편네가 무슨 일이 있 어서. 다 고만두어. 나는 우리 아버지에게 내버림을 당한 사람이고 세상에서 구박을 당한 사람이니까…… 에…… 후…….”
우리 아버지는 이렇게 떠드시다가 다시 한참 가만히 앉아 계시더니 벌떡 일어나시며, “엥! 가만있거라. 참말 그대로 있을 수는 없어! 내가 가서 설교를 좀 해야지 내가 목사 노릇 을 좀 해야 해.”
하고 모자를 쓰고 벌떡 일어나시며 문 밖으로 나가시려 하니까 어머니는 또다시 목소리를 고치시어 부드럽고 애원하는 중에도 조금 노기를 띄우신 말소리로, “여보, 제발 좀 고만두. 글쎄 이게 무슨 짓이오. 이 밤중에 가기는 어디로 가며 가셔서 어떻 게 하실 모양이오. 자! 고만 옷 좀 벗고 드러눕구려.”
아버지는 듣지도 않고 방문을 홱 열어 젖뜨리셨다. 고요한 저녁 공기가 훈훈한 방 안으로 훅 불어 들어오며 드러누워 있는 나의 온몸을 선뜩하게 하더니 석유등잔의 불이 두서너 번 번득번득한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팔을 붙잡으시었다. 웅크리고 마루에 앉아 있던 할멈은 황망하여 하지 도 않고 여러 번 경험한 그의 침착한 태도로 두 팔을 벌리고 다만 이리 왔다 저리 왔다 하 면서 동정만 살피고 있다.
어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글쎄 남부끄럽지도 않소. 어서 들어갑시다. 가기는 어디로 가우. 남이 알면 글쎄 무슨 꼴 이우.”
하는 말을 듣지도 않으시고 우리 아버지는 어머니의 팔을 홱 뿌리치셨다. 어머니는 에크 소리를 지르시며 방문 밖에서 방 안으로 넘어지시며 한참이나 아무 말 없이 엎드려 계신다.
“남부끄럽다. 남부끄럼을 당하는 것보다도 자기 양심에 부끄러운 짓을 하는 것이 더욱 부 끄러운 것이야.”
하시고 술취하신 얼굴에 분기를 띠시고 또 한옆으로는 엎어져 일어나시지도 못하시는 어 머니를 다소간 가엾음과 미안한 마음이 생기시나 위신상 어찌하시지 못하는 어색한 얼굴 을 돌이켜보지도 않으시고 문 바깥으로 나가신다.
나가시는 규칙 없는 발걸음 소리가 대문이 닫혀지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할멈은 어머니를 붙잡아 일으키시며, “다치지 않으셨어요?”
하며 어머니가 애처로워 보이기도 하고 또는 아버지의 술주정이 귀찮기도 하여서 상을 찌 푸려 어머니를 들여다보시며 물어 본다.
나도 그때야 이불을 벗고 일어나서 어머니를 보았다. 어머니는 일어나 앉으시기는 일어나 앉았으나 아무 말이 없으시다.
철모르는 나의 아우는 말라붙은 코딱지를 때때 주먹으로 비비면서 힘없는 손가락을 꼼질 꼼질하며 자고 있다. 나는 다만 어머니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을 뿐이었다.
몇 분간 동안은 아주 고요 정적하여졌다. 폭풍우가 지나간 바다의 물결 같은 공기가 온 방 안을 채우고 자는 듯이 고요하다.
그때에 나는 어머니의 머리카락이 덮인 두 눈을 바라보았다. 두 눈에는 불에 비쳐 반짝거 리는 눈물 방울이 방울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이것을 본 나의 전신의 뜨거운 피는 바늘 끝 으로 찌르는 듯이 파랗게 식는 듯하였다. 나의 마음은 어머니의 눈물에서 그 무슨 비애의 전염을 받은 듯이 극도로 쓰렸었다. 나는 그대로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어 이불 을 뒤집어쓰고 어머니와 함께 눈물 흘려 울었다.
할멈은 화젓가락만 만지고 있는지 달가닥달가닥 하는 소리가 들릴 뿐이다. 그리고 어머니 의 떨리는 숨소리와 코 마시는 소리가 이불을 뒤집어쓴 나의 귀 위에서 연민과 비애의 정 을 속삭거려 주었다.
어머니는 한참이나 우시더니 코를 요강에 푸시고 이불을 다시 붙잡아 나와 나의 동생을 다 시 덮어 주시었다. 그리고 한 손으로 나의 발치와 나의 가장자리를 어루만지실 때 간지러 운 자애의 정이 부드러운 명주옷같이 나의 어린 가슴을 따뜻하게 하시었다.
이튿날 아침, 우리 어머니는 나의 동생의 손을 잡고 나와 함께 우리 외가로 향하여 떠나갔 다. 물론 아침도 먹지 않고 늦도록 주무시는 아버지의 아침밥은 할멈에게 부탁이나 하셨는 지 으레 알아 할 할멈에게 집안일을 맡기시고 오 리 남짓한 외가로 갔다.
가는 길에 나는 매우 기뻤었다. 무엇 하러 가시는지도 모르는 어머니의 심정은 알지도 못 하고 귀여워하시는 할머니를 만나러 간다는 것만 좋아서 앞장을 섰다.
그때의 어머니는 하소연할 곳을 찾아가시는 것이었을 것이다. 팔자의 애소(哀訴)를 자기의 친부모에게 하러 가시는 것이었을 것이다. 일생을 의탁한 우리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 것 이 아니며 못 믿는 것이 아니지마는 발 아래 엎드려 몸부림할 만치 자기의 울분과 자기의 비애를 호소할 곳을 찾아 지금 우리 어머니는 우리 외가로 가시는 것이다.
그때 그에게는 자기의 부모가 유일한 하느님이며 위안자이었다. 약한 심정을 붙일 만한 신 앙을 갖지 못한 우리 어머니는 자애의 나라로 달음박질하면 거기에 자기를 위로하여 주고 자기의 애소의 기도를 들어줄 아버지 어머니가 계실 것을 믿음이었었다. 명명한 대공과 막 막한 천애 저편에 위안(慰安) 나라를 건설치 못하고 작은 가슴속과 보이지 않는 심상 위에 천당과 낙원을 짓지 못한 우리 어머니는 다만 자애의 동산을 찾아가시었다.
걸어가시는 어머니의 얼굴에는 어제 저녁의 울분을 참지 못하시는 푸른 표정과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팔자 한탄을 푸념하리라는 굳은 결심의 빛이 보였었다.
가게 앞을 지나고 개천을 건너고 사람과 길을 피하고 돌멩이가 발끝에 챌 때에도 우리 어 머니의 머릿속에는 그것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어머니의 머리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나 어린 어린아이의 그 마음 을 갖지는 않았었다. 우리를 볼 때 우리 아버지를 생각하며 부모의 자애를 생각할 때에도 자기의 충심에서 발동하는 애모의 정을 깨달았다.
그는 자기의 남편을 사랑하는 동시에 자기의 부모를 사랑하였다. 그는 자기 남편의 불명예 를 자기 부모에게 하소연하는 것을 아까 집 대문을 나설 때까지는 결심하였을는지는 알지 못하겠으나 반이나 넘어 가까이 자기 부모의 집을 왔을 때에 그것을 부끄리는 정이 나오는 동시에 또한 그 불명예로운 소리를 발하는 아내 된 자기의 불명예로움을 알았다. 그리고 자기 남편의 불명예를 은폐하려는 동시에 자기 부모의 심로를 생각하였다. 자애를 부어 주 는 자기 부모에게 자기의 울분을 애소하는 것이 자기에게는 좋은 것이나 자기 부모의 마음 을 조심되게 함을 깨달았다.
나의 동생은 아슬렁아슬렁 걸어가면서 무어라고 감흥에 띤 이야기를 중얼거리면서 걸어간 다.
어머니는 외가에 거의 다 왔었을 때에 나에게 은근한 목소리로, “너 할머니나 할아버지께 어제 저녁에 아버지가 술 먹고 야단했다는 말은 하지 말어라.”
하시며 무슨 응답이나 들으려시는 듯이 나를 들여다보신다. 나는, “예.”
하였다. 그 ‘예’ 소리가 나의 입에서 떨어지면서 무슨 해결치 못할 문제가 다 풀린 듯한 감 이 생기며 집에서 나올 때부터 무슨 불행스럽고 불안하던 마음이 다시 화평하여졌다.
출전:개벽30(192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