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재로

SHORT STORY

산골

김유정 · 약 19분 · 9,192자

❧

산골

김유정 산 머리 위에서 굽어보던 햇님이 서쪽으로 기울어 나무에 긴 꼬리가 달렸건만 나물 뜯을 생각 은 않고, 이뿐이는 늙은 잣나무 허리에 등을 비겨 대고 먼 하늘만 이렇게 하염없이 바라보 고 섰다.

하늘은 맑게 개고 이쪽저쪽으로 뭉글뭉글 피어오른 흰 꽃송이는 곱게도 움직인다. 저것도 구름인지 학들은 쌍쌍이 짝을 짓고 그 새로 날아들며 끼리끼리 어르는 소리가 이 수풍까지 멀리 흘러내린다.

갖가지 나무들은 사방에 잎이 욱었고 땡볕에 그 잎을 펴들고 너훌너훌 바람과 아울러 산골 의 향기를 자랑한다.

그 공중에는 나는 꾀꼬리가 어여쁘고…… 노란 날개를 팔딱이고 이가지 저가지로 옮아 앉 으며 흥에 겨운 행복을 노래 부른다.

―---고―이! 고이고―이!

요렇게 아양스레 노래도 부르고.

―---담배 먹구 꼴 비어!

맞은쪽 저 바위 밑은 필시 호랑님의 드나드는 굴이리라. 음침한 그 위에는 가시덤불 다래 넝쿨이 어지러이 엉클리어 지붕이 되어 있고, 이것도 돌이랄지 연록색 털복숭이는 올망졸 망 놓였고,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뻐꾸기는 날아와 그 잔등에 다리를 머무르며.

―---뻐꾹! 뻐꾹! 뻐뻐꾹!

어느덧 이뿐이는 눈시울에 구슬방울이 맺히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물 바구니가 툭, 하고 땅에 떨어지자 두 손에 펴든 치마폭으로 그새 얼굴을 폭 가리고는 이뿐이는 흐륵흐륵 마냥 느끼며 울고 섰다.

이제야 후회나노니 도련님 공부하러 서울로 떠나실 때 저도 간다고 왜 좀더 붙들고 늘어지 지 못했던가,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만 미어질 노릇이다. 그러나 마님의 눈을 기어 자그만 보따리를 옆에 끼고 산속으로 이십 리나 넘어 따라갔던 이뿐이가 아니었던가. 과연 이뿐이 는 산등을 질러갔고 으슥한 고갯마루에서 기다리고 섰다가 넘어오시는 도련님의 손목을 꼭 붙잡고, “난 안 데려가지유!”

하고 애원 못 한 것도 아니니 공연스레 눈물부터 앞을 가렸고 도련님이 놀라며, “너 왜 오니? 여름에 꼭 온다니까, 어여 들어가라.”

하고 역정을 내심에는 고만 두려웠으나 그래도 날 데려가라고 그 몸에 매어달리니 도련님 은 얼마를 벙벙히 그냥 섰다가, “울지 마라 이뿐아, 그럼 내 서울 가 자리나 잡거든 널 데려가마.”

하고 등을 두드리며 달래일 제 만일 이 말에 이뿐이가 솔깃하여 꼭 곧이듣지만 않았던들 도련님의 그 손을 안타까이 놓지는 않았던 걸…….

“정말 꼭 데려가지유?”

“그럼 한 달 후에면 꼭 데려가마.”

“난 그럼 기다릴 테야유!”

그리고 아침 햇발에 비끼는 도련님의 옷자락이 산등으로 꼬불꼬불 저 멀리 사라지고 아주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이뿐이는 남이 볼까 하여 피어 흩어진 개나리 속에 몸을 숨기고 치마 끈을 입에 물고는 눈물로 배웅하였던 것이 아니런가. 이렇게도 철석같이 다짐을 두고 가시 더니 그 한 달이란 대체 얼마나 되는 겐지 몇 한 달이 거듭 지나고 돌도 넘었으련만 도련님 은 이렇다 소식 하나 전할 줄조차 모르신다. 실토로 터놓고 말하자면 늙은 이 잣나무 아래 에서 도련님과 맨 처음 눈이 맞을 제 이뿐이가 먼저 그러자고 한 것도 아니련만…… 이뿐 어머니가 마님 댁 씨종이고 보면 그 딸 이뿐이는 잘 따져야 씨의 씨종이니 하잘것없는 계 집애이거늘 이뿐이는 제 몸이 이럼을 알고 시내에서 홀로 빨래를 할 제이면 도련님이 가끔 덤벼들어 이게 장난이겠지, 품에 꼭 껴안고 뺨을 깨물어뜯는 그 꼴이 숭굴숭굴하고 밉지는 않았으나 그러나 이뿐이는 감히 그런 생각을 먹어 본 적이 없었다. 그날도 마님이 구미가 제치셨다고 얘 이뿐아 나물 좀 뜯어 온, 하실 때 이뿐이는 퍽으나 반가웠고 아침밥도 몇 술 로 겉날리고 보구니를 동무삼아 집을 나섰으니 나이 아직 열여섯이라 마님에게 귀염을 받 는 것이 다만 좋았고 칠칠한 나물을 뜯어 드리고자 한사코 이 험한 산속으로 기어올랐다.

풀잎의 이슬은 아직 다 마르지 않았고 바위 틈바구니에 흩어진 잔디에는 커다란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서 떡 머구리 한 놈을 우물거리며 있는 중이매 이뿐이는 쌔근쌔근 가쁜 숨을 쉬어 가며 그걸 가만히 들여다보고 섰다가 바로 발 앞에 도라지순이 있음을 발견하고 꼬챙 이로 마악 캐려 할 즈음 등뒤에서 뜻밖에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려보니 언제 어디로 따라왔던가, 도련님은 물푸레나무 토막을 한 손에 지팡이로 짚고 붉은 얼굴이 땀바가지가 되어 식식거리며 그리고 싱글싱글 웃고 있다. 그 모양이 하 도 수상하여 이뿐이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바라보니 도련님은 좀 면구쩍은지 낯을 모로 돌 리며 그러나 여일히 싱글싱글 웃으며 뱃심 유한 소리가―--- “난 지팽이 꺾으러 왔다.”

그렇지마는 이뿐이는 며칠 전 마님이 불러 세우고 ‘너 도련님하구 같이 다니면 매맞는다’ 하시던 그 꾸지람을 얼른 생각하고, “왜 따라왔지유…… 마님 아시면 남 매맞으라구?”

하고 암팡스레 쏘았으나 도련님은 귓등으로 듣는지 그래도 여전히 싱글거리며 뱃심 유한 소리로, “난 지팽이 꺾으러 왔다.”

그제야 이뿐이는 성을 안 낼 수 없고, “마님께 나 매맞어두 난 몰라.”

혼자말로 이렇게 되알지게 쫑알거리고 너야 가든 말든 하라는 듯이 고개를 돌리어 아까의 도라지를 다시 캐자노라니 도련님은 무턱대고 그냥 와락 달려들어, “너 맞는 거 나는 알지?”

이뿐이를 뒤로 꼭 붙들고 땀이 쪽 흐른 그 뺨을 또 잔뜩 깨물고는 놓질 않는다. 이뿐이는 어려서부터 도련님과 같이 자랐고 같이 놀았으되 제가 먼저 그런 생각을 두었다면 도련님 을 벌컥 떠다밀어 바위 너머로 곤두박히게 했을 리 만무이었고, 궁둥이를 털고 일어나며 도련님이 무색하여 멀거니 쳐다보고 입맛만 다시니 이뿐이는 그 꼴이 보기 가여웠고 죄를 저지른 제 몸에 대하여 죄송한 자책이 없던 바도 아니건마는 다시 손목을 잡히고 이 잣나 무 밑으로 끌릴 제에는 온 힘을 다하여 그 손깍지를 버리며 야단친 것도 사실이 아닌 건 아 니나, 그러나 어딘가 마음 한편에 앙살을 피우면서도 넉히 끌리어 가도록 도련님의 힘이 좀더 좀더 하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면 그것은 거짓말이 되고 말 것이다. 물론 이뿐이가 얼

굴이 빨개지며 앙큼스러운 생각을 먹은 것은 바로 이때이었고, “난 몰라, 마님께 여쭐 터이야, 난 몰라!”

하고 적잖이 조바심을 태우면서도 도련님의 속맘을 한번 뜯어 보고자, “누가 종두 이러는 거야?”

하고 손을 뿌리치고 된통 호령을 하고 보니 도련님은 이 깊고 외진 산속임에도 불구하고 귀에다 입을 갖다 대고 가만히 속삭이는 그 말이, “너 나하고 멀리 도망가지 않으련!”

그러니 이뿐이는 이 말을 참으로 꼭 곧이들었고 사내가 이렇게 겁을 집어먹는 수도 있는지 도련님이 땅에 떨어지는 성냥갑을 호줌에 다시 집어널 줄도 모르고 덤벙거리며 산 아래로 꽁지를 뺄 때까지 이뿐이는 잣나무 뿌리를 베고 풀밭에 번듯이 드러누운 채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인제 멀리만 달아나면 나는 저 도련님의 아씨가 되려니 하는 생각에 마님께 진상 할 나물 캘 생각조차 잊고 말았다. 그러나 조금 지나매 이뿐이는 어쩐지 저도 겁이 나는 듯 싶었고 발딱 일어나 사면을 휘돌아보았으나 거기에는 험상스러운 바위와 우거진 숲이 있 을 뿐 본 사람은 하나도 없으련만―---아마 산이 험한 탓일지도 모르리라. 가슴은 여전히 달랑거리고 두려우면서 그러나 이 몸뚱이를 제 품에 꼭 품고 같이 둥굴고 싶은 안타까운 그런 행복이 느껴지지 않은 것도 아니었으니 도련님은 이렇게 정을 들이고 가시고는 이제 와서는 생판 모르는 체하시는 거나 아닐런가…….

마 을 두 손등으로 눈물을 씻고 고개는 어레 들었으나 나물 뜯을 생각은 않고 이뿐이는 늙은 잣 나무 밑에 앉아서 먼 하늘을 치켜대고 도련님 생각에 이렇게도 넋을 잃는다.

이제 와 생각하면 야속도 스럽나니 마님께 매를 맞도록 한 것도 결국 도련님이었고 별 욕 을 다 당하게 한 것도 결국 도련님이 아니었던가…….

매일과 같이 산엘 올라다닌 지 단 나흘이 못 되어 마님은 눈치를 채셨는지 혹은 짐작만 하 셨는지 저녁때 기진하여 내려오는 이뿐이를 불러 앉히시고, “너 요년 바른 대로 말해야지 죽인다.”

하고 회초리로 때리시되 볼기짝이 톡톡 불거지도록 하시었고, 그래도 안차게 아니라고 고 집을 쓰니 이번에는 어머니가 달겨들어 머리채를 휘감고 주먹으로 등어리를 서너 번 쾅쾅 때리더니 그만도 좋으련만 뜰 아랫방에 갖다 가두고는 사날씩이나 바깥 구경을 못 하게 하 고 구메밥으로 구박을 막 함에는 이뿐이는 짜장 서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징역살이 맨 마 지막 밤이 깊었을 제 이뿐이는 너무 원통하여 혼자 앉아서 울다가 자리에 누운 어머니의 허리를 꼭 끼고 그 품속으로 기어들며 ‘어머니, 나 데련님하고 살 테야’ 하고 그예 저의 속 중을 토설하니 어머니는 들었는지 먹었는지 그냥 잠잠히 누웠더니 한참 후 후유, 하고 한 숨을 내뿜을 때에는 이미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였고, 그리고 또 한참 있더니 입을 열어 하는 이야기가 지금은 이렇게 늙었으나 자기도 색시 때에는 이뿐이만치나 어여뻤고 얼마 나 맵시가 출중났던지 노라리와 은근히 배가 맞았으나 몇 달이 못 가서 노마님이 이걸 아 시고 하루는 불러 세고 때리시다가 마침내 샘에 못 이기어 인두로 하초를 지지려고 들이덤 비신 일이 있다고 일러 주고 다시 몇 번 몇 번 당부하여 말하되 석숭네가 벌써부터 말을 건 네는 중이니 도련님에게 맘을랑 두지 말고 몸 잘 갖고 있으라 하고 딱 떼는 것이 아닌가.

하기야 이뿐이가 무남독녀의 귀여운 외딸이 아니었더런들 사흘 후에도 바깥엔 나올 수 없 었으려니와 비로소 대문을 나와 보니 그간 세상이 좀 넓어진 것 같고 마치 우리를 벗어난 짐승과 같이 몸의 가뜬함을 느꼈고 흉측스러운 산으로 뺑뺑 둘러싼 이 산골에서 벗어나 넓 은 버덩으로 나간다면 기쁘기가 이보다 좀 더하리라 생각도 하여 보고 어머니의 영대로 고

추밭을 매러 개울길로 내려가려니까 왼편 수풍 속에서 도련님이 불쑥 튀어나오며 또 붙들 고 산에 안 갈 테냐고 대고 보채인다. 읍에 가 학교를 다니다가 요즘 방학이 되어 집에 돌 아온 뒤로는 공부는 할 생각 않고 날이면 날 저물도록 저만 이렇게 붙잡으러 다니는 도련 님이 딱도 하거니와 한편 마님도 무섭고 또는 모처럼 용서를 받는 길로 그러고 보면 이번 에는 호되이 불이 내릴 것을 알고 이뿐이는 오늘은 안 되니 낼모레쯤 가자고 좋게 달래다 가 그래도 듣지 않고 굳이 가자고 성화를 하는 데는 할 수 없이 몸을 뿌리치고 뺑손을 놀 수밖에 딴도리가 없었다. 구질구질히 내리는 비로 말미암아 한동안 손을 못 댄 고추밭은 풀들이 제법 성큼히 엉기었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좋을지 갈피를 모르겠는데 이뿐이는 되는 대로 한편 구석에 치마를 도사리고 앉아서, 이것도 명색은 김매는 거겠지, 호미로 흙 등만 따작거리며 정작 정신은 어젯밤 종은 상전과 못 사는 법이라던 어머니의 말이 옳은지 그른지 그것만 일념으로 아로새기며 이리 씹고 저리도 씹어 본다. 그러나 이뿐이는 아무렇 게도 나는 도련님과 꼭 살아 보겠다, 혼자 맹세하고 제가 아씨가 되면 어머니는 일테면 마 님이 되련마는 왜 그리 극성인가 싶어서 좀 야속하였고 해가 한나절이 되어 목덜미를 확확 달릴 때까지 이리저리 곰곰 생각하다가 고개를 들어 보매 밭은 여태 한 고랑도 다 끝이 못 났으니 이놈의 밭이, 하고 탓 안 할 탓을 하며 저절로 하품이 나올 만치 어지간히 기가 막 혔다. 이번에는 좀 빨랑빨랑 하리라 생각하고 이뿐이는 호미를 잽싸게 놀리며 폭폭 찍고 덤볐으나 그래도 웬일인지 일은 손에 붙지를 않고 그뿐 아니라 등뒤 개울의 덤불에서는 온 갖 잡새가 귀둥대둥 멋대로 속삭이고 먼발치에서 풀을 뜯고 있는 황소가 메― 하고 늘어지 게도 소리를 내뽑으니 이뿐이는 이걸 듣고 갑자기 몸이 나른해지지 않을 수 없고 밭가에 선 수양버들 그늘에 쓰러져 한잠 들고 싶은 생각이 곧바로 나지마는 어머니가 무서워 차마 그걸 못 하고 만다. 인제는 계집애는 밭일을 안 하도록 법이 됐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이뿐 이는 울화증이 나서 호미를 메꽂고 얼굴의 땀을 씻으며 앉았노라니까 들로 보리를 걷으러 가는 길인지 석숭이가 빈 지게를 지고 꺼불꺼불 밭머리에 와 서더니 아주 썩 시퉁그러지게 입을 삐죽거리며 이뿐이를 건너대고 하는 소리가―--- “너 데련님하고 그랬대지.”

새파랗게 간 비수로 가슴을 쭉 내리긋는대도 아마 이토록은 재겹지 않으리라마는 이뿐이 는 어서 들었느냐고 따져 볼 겨를도 없이 얼굴이 그만 홍당무가 되었고, 그놈의 소위로 생 각하면 대뜸 들어덤벼 그 귓배기라도 물고 늘어질 생각이 곧 간절은 하나 한 죄는 있고 어 째 볼 용기가 없으매 다만 고개를 푹 수그릴 뿐이다. 그러니까 석숭이는 제가 괜 듯싶어서 이뿐이를 짜장 넘보고 제법 밭 가운데까지 들어와 떡 버티고 서서는 또 한번 시큰둥하게 그리고 엇먹는 소리로, “너 데련님하구 그랬대지.”

전일 같으면 제가 이뿐이에게 지게 막대기로 볼기 맞을 생각도 않고 감히 이 따위 버르장 머리는 하기커녕 즈 아버지 장사하는 원두막에서 몰래 참외를 따가지고 와서, “얘 이뿐아, 너 이거 먹어라.”

하다가, “난 네가 주는 건 안 먹을 테야.”

하고 몇 번 내뱉음에도 굴치 않고 굳이 먹으라고 떠맡기므로 이뿐이가 마지못하는 체하고 받아 들고는 물론 치마폭에 흙을 싹싹 문대고 나서 깨물고 앉았노라면 아무쪼록 이뿐이 맘 에 잘 들도록 호미를 대신 손에 잡기가 무섭게 는실난실 김을 매주었고, 그리고 가끔 이뿐 이를 웃겨 주기 위하여 그것도 재주라고 밭고랑에서 잘 봐야 곰 같은 몸뚱이로 이리 둥굴 고 저리 둥굴고 하였다. 석숭 아버지는 이놈이 또 어디로 내뺐구나 하고 찾아다니다가 여 길 와보니 매라는 제 밭은 안 매고 남 계집애 밭에 들어와서 대체 온 이게 무슨 놀음인지

이 꼴이고 보매 기도 막힐 뿐더러 터지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고 노여운 낯을 지어 가며, “너 이놈아, 네 밭은 안 매고 남의 밭에 들어와 그게 뭐냐?”

하고 꾸중을 하였지마는 석숭이가 깜짝 놀라서 돌아다보고 고만 멀쑤룩하여 궁둥이의 흙 을 털고 일어서며, “이뿐이 밭 좀 매주러 왔지 뭘 그래?”

하고 되레 퉁명스러이 뻗댐에는 더 책하지 않고, “어 망할 자식두 다 많어이!”

하고 돌아서 저리로 가며 보이지 않게 피익 웃고 마는 것인데, 그러면 이뿐이는 저의 처지 가 꽤 야릇하게 됨을 알고 저기까지 분명히 들리도록, “너보고 누가 밭 매달랬어? 가, 어여 가, 가.”

하고 다 먹은 참외는 생각 않고 등을 떠다밀며 구박을 막 하던 이런 터이련만 제가 이제 와 누굴 비위를 긁다니 하늘이 무너지면 졌지 이것은 도시 말이 안 된다.

돌 이뿐이는 남다른 부끄럼으로 온 전신이 확확 다는 듯싶었으나 그러나 조금 뒤에는 무안을 당한 거기에 대갚음이 없어서는 아니 되리라 생각하고 앙칼스러운 역심이 가슴을 콕 찌를 때에는 어깨뿐만 아니라 등어리 전체가 샐룩거리다가 새침히 발딱 일어나 사방을 훑어보 더니 대낮이라 다들 일들 나가고 안마을에 사람이 없음을 알고 석숭이 소맷자락을 넌지시 끌며 그 옆 숙성히 자란 수수밭 속으로 들어간다. 밭 한복판은 아늑하고 아무 데도 보이지 않으므로 함부로 떠들어도 괜찮으려니 믿고 이뿐이는 거기다 석숭이를 세워 놓자 밭고랑 에 널려진 돌 틈에서 맞아 죽지 않고 단단히 아플 만한 모리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고 그 옆 정강이를 모질게 후려치며, “이 자식, 뭘 어째구 어째?”

하고 딱딱 으르니까 석숭이는 처음에 뭐나 좀 생길까 하고 좋아서 따라왔던 걸 별안간 난 데없는 모진 돌만 날아듦에는, “아야!”

하고 소리치자 똑 선불 맞은 노루 모양으로 한번 뻐들껑 뛰며 눈이 그야말로 왕방울만해지 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석숭이는 미움보다 앞서느니 기쁨이요, 전일에는 그 옆을 지 나도 본 둥 만 둥하고 그리 대단히 여겨 주지 않던 그 이뿐이가 일부러 이리 끌고 와 돌로 때리되 정말 아프도록 힘을 들일 만치 이뿐이에게 있어는 지금의 저의 존재가 그만큼 끔찍 함을 그 돌에서 비로소 깨닫고 짓궂이 씽글씽글 웃으며 한번 더 뒤둥그러진, 그리고 흘게 늦은 목소리로, “뭘 데련님하고 그랬대는데.”

하고 놀려 주었다. 이뿐이는, “뭐 이 자식?”

하고 상기된 눈을 똑바로 떴으나 이번에는 돌멩이 집을 생각을 않고 아까부터 겨우 참아 왔던 울음이, “으응!”

하고 탁 터지자 잡은 참 덤벼들어 석숭이 옷가슴에 매어달리며 쥐어 뜯으니 석숭이는 이뿐 이를 울려 논 것은 저의 큰 죄임을 얼른 알고 눈이 휘둥그래서,

“아니다, 아니다, 내 부러 그랬다, 아니다.”

하고 입에 부리나케 그러나 손으로 등을 어루만지며, ‘아니다’를 여러 십 번을 부른 때에야 간신히 울음을 진정해 놓았고 이뿐이가 아직 느끼는 음성으로 몇 번 당부를 하니, “인제 남 듣는 데 그러면 내 너 죽일 터야?”

“그래 인전 안 그러마.”

참으로 이런 나쁜 소리는 다시 입에 담지 않으리라 맹세하였다. 이뿐이도 그제야 마음을 놓고 흔적이 없도록 눈물을 닦으면서, “다시 그래 봐라 내 죽인다!”

또 한번 다져 놓고 고추밭으로 도로 나오려 할 제 석숭이가 와락 달려들어 그 허리를 잔뜩 껴안고, “너 그럼 우리집에서 나한테로 시집오라니깐 왜 싫다구 그랬니?”

하고 설혹 좀 성가시게 굴었다 치더라도, 만일 이뿐이가 이 행실을 도련님이 아신다면 단 박에 정을 떼시려니 하는 염려만 없었더라면 그리 대수롭지 않은 것을 그토록 오지게 혼을 냈을 리 없었겠다고, 생각하면 두고두고 입때껏 후회가 나리만치 그렇게 사내의 뺨을 우려 친 것도 결국 도련님을 위하는 이뿐이의 깨끗한 정이 아니었던가…….

물 가득히 품에 찬 서러움을 눈물로 가시고 나물 바구니를 손에 잡았으니, 이뿐이는 다시 일 어나 산중턱으로 거친 수풍 속을 기어내리며 도라지를 하나 둘 캐기 시작한다.

참인지 아닌지 자세히는 모르나 멀리 날아온 풍설을 들어 보면, 도련님은 서울 가 어여쁜 아씨와 다시 정분이 났다 하고 그뿐만도 오히려 좋으련마는 댁의 마님은 마님대로 늙은 총 각 오래 두면 병난다 하여 상냥한 아가씨만 찾는 길이니 대체 이게 웬셈인지 이뿐이는 골 머리가 아팠고 도라지를 캔다고 꼬챙이를 땅에 꾸욱 꽂으니 그대로 짚고 선 채 해만 점점 부질없이 저물어 간다. 맥을 잃고 다시 내려오다 이뿐이는 앞에 우뚝 솟은 바위를 품에 얼 싸안고 그 앞을 굽어보니 험악한 석벽 틈에 맑은 물은 웅숭깊이 충충 괴었고 설핏한 하늘 의 붉은 노을 한쪽을 똑 떼들고 푸른 잎새로 전을 둘렀거늘, 그 모양이 보기에 퍽도 아름답 다. 그걸 거울삼고 이뿐이는 저 밑에 까맣게 비치는 저의 외양을 또 한번 고쳐 뜯어 보니 한때는 도련님이 조르다 몸살도 나셨으려니와 의복은 비록 추레할망정 저의 눈에도 밉지 않게 생겼고 남 가진 이목구비에 반반도 하련마는 뭐가 부족한지 달리 눈이 맞는 도련님의 심정이 알 수 없고 어느덧 원망스러운 눈물이 눈에서 떨어지니 잔잔한 물면에 물둘레를 치 기도 전에 무슨 밥이나 된다고 커단 꺽지는 휘엉휘엉 올라와 꼴딱 받아 먹고 들어간다. 이 뿐이는 얼빠진 등신같이 맑은 이 물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니 불시로 제 몸을 풍덩 던지어 깨끗이 빠져도 죽고 싶고, 아니 이왕 죽을진댄 정든 님 품에 안겨 같이 풍, 빠지어 세상사 를 다 잊고 알뜰히 죽고 싶고, 그렇다면 도련님이 이 등에 넙죽 엎디어 뺨에 뺨을 비벼 대 고, 그리고 이 물을 같이 굽어보며, “얘 울지 마라, 내가 가면 설마 아주 가겠니?”

하고 세우 달랠 제 꼭 붙들고 풍덩실 하고 왜 빠지지 못했던가. 시방은 한가도 컸건마는 그 이뿐이는 그리도 삶에 주렸던지, “정말 올 여름엔 꼭 오우?”

하고 아까부터 몇 번 묻던 걸 또 한번 다져 보았거늘 도련님은 시원스러이 선뜻, “그럼 오구말구. 널 두고 안 오겠니!”

하고 대답하고 손에 꺾어 들었던 노란 동백꽃을 물 위로 홱 내던지며, “너 참 이 물이 무슨 물인지 알면 용치?”

눈을 끔벅끔벅하더니 이야기하여 가로되, 옛날에 이 산속에 한 장사가 있었고 나라에서는 그를 잡고자 사방팔면에 군사를 놓았다. 그렇지마는 장사에게는 비호같이 날랜 날개가 돋 친 법이니 공중을 훌훌 나는 그를 잡을 길 없고 머리만 앓던 중 하루는 그예 이 물에서 목 욕을 하고 있는 것을 사로잡았다는 것이로되, 왜 그러냐 하면 하느님이 잡수시는 깨끗한 이 물을 몸으로 흐렸으니 누구라도 천벌을 아니 입을 리 없고 몸에 물이 닿자 돋쳤던 날개 가 흐지부지 녹아 버린 까닭이라고 말하고, 도련님은 손짓으로 장사의 처참스러운 최후를 시늉하며 가장 두려운 듯이 눈을 커닿게 끔적끔적하더니 뒤를 이어 그 말이, “아 무서! 얘 우지 마라. 저 물에 눈물이 떨어지면 너 큰일난다.”

그러나 이뿐이는 그까짓 소리는 듣는 둥 마는 둥 그리 신통치 못하였고, 며칠 후 서울로 떠 나면 아주 놓일 듯만 싶어서 도련님의 얼굴을 이윽히 쳐다보고 그럼 다짐을 두고 가라 하 다가, 도련님이 조금도 서슴없이 입고 있던 자기의 저고리 고름 한 짝을 뚝 떼어 이뿐이 허 리춤에 꾹 꽂아 주며, “너 이래두 못 믿겠니?”

하니 황송도 하거니와 설마 이걸 두고야 잊으시진 않겠지 하고 속이 든든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대장부의 노릇이매 이렇게 하고 변심은 없을 게나 그래도 잘 따져 보니 이 고름 이 말하는 것도 아니거든 차라리 따라 나서느니만 같지 못하다고 문득 마음을 고쳐 먹고 고개로 쫓아간 건 좋으련마는 왜 그랬던고. 좀더 매달리어 진대를 안 붙고 고기 주저앉고 말았으니 이제 와서는 한가만 새롭고 몸에 고이 간직하였던 옷고름을 이 손에 꺼내 들고 눈물을 흘려 보되 별수없나니 보람 없이 격지만 늘어 간다. 하나 이거나마 아주 없었더런 들 그야 살맛조차 송두리 잃었으리라마는 요즘 매일과 같이, 이 험한 깊은 산속에 올라와 옛 기억을 홀로 더듬어 보며 이뿐이는 해가 저물도록 이렇게 울고 섰곤 하는 것이다.

길 모든 새들은 어제와 같이 노래를 부르고 날도 맑으련만 오늘은 웬일인지 이뿐이는 아직도 올라오질 않는다.

석숭이는 아버지가 읍의 장에 가서 세 마리의 닭을 팔아 그걸로 소금을 사오라 하여 아침 일찍이 나온 것도 잊고 이 산에 올라와 다리를 묶은 닭들은 한편에 내던지고 늙은 잣나무 그늘에 누워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으나 이뿐이가 좀체 나오지 않으매 웬일일까, 고게 또 노하지나 않았나 하고 일쩌웁이 이렇게 애를 태운다. 올 가을이 얼른 되어 새 곡식을 거두 면 이뿐이에게로 장가를 들게 되었으니 기쁨인들 이 위 더할 데 있으랴마는 이번도 또 이 뿐이가 밥도 안 먹고 죽는다고 야단을 친다면 헛일이 아닐까 하는 염려도 없지 않았거늘 그렇게 쌀쌀하고 매일매일 하던 이뿐이의 태도가 요즘에 들어와서는 갑자기 다소곳하고 눈 한번 흘길 줄도 모르니 이건 참으로 춤을 추어도 다 못 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슬비 가 내리던 날 마님 댁 울 뒤에서 이뿐이는 옥수수를 따고 섰고 제가 그 옆을 지날 제 은근 히 손짓을 하므로 가까이 다가서니 귀에다 나직이 속삭이는 소리가, “너 편지 하나 써주련?”

“그래 그래 써주마, 내 잘 쓴다.”

석숭이는 너무 반가워서 허둥거리며 묻지 않는 소리까지 하다가 또 그 말에 내 너 하라는 대로 다 할 게니 도련님에게 편지를 쓰되, 이뿐이는 여태 기다립니다, 하고 그리고 이런 소 리는 아예 입 밖에 내지 말라 하므로 그런 편지면 일년 내내 두고 썼으면 좋겠다 속으로 생 각하고 채 틀 못 박힌 연필 글씨로 다섯 줄을 그리기에 꼬박이 이틀 밤을 새고 나서 약속대

로 산으로 이뿐이를 만나러 올라올 때에는 어쩐지 가슴이 두근두근하는 것이 바로 아내를 만나러 오는 남편의 그 기쁨이 또렷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뿐이가 얼른 올라와야 뭐가 제 일 좋으냐 물어 보고 이 닭들을 팔아 선물을 사다 주련만 오진 않고 석숭이는 암만 생각해 야 영문을 모르겠으니 아마 요전번, “이 편지 써왔으니깐 너 나구 꼭 살아야 한다.”

하고 크게 얼른 것이 좀 잘못이라 하더라도 이뿐이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그래.”

하고 눈에 눈물을 보이며, “그 편지 읽어 봐.”

하고 부드럽게 말한 걸 보면 그리 노한 것은 아니니 석숭이는 기뻐서 그 앞에 떡 버티고, 제가 썼으나 제가 못 읽는 그 편지를 떠듬떠듬 데련님 전상사리, 가신 지가 오래 됐는디 왜 안 오구, 일년 반이 됐는디 왜 안 오구 하니깐 이뿐이는 밤마두 눈물로 새오며, 이뿐이는 그럼 죽을 테니까 날을 듯이 얼찐 와서―---이렇게 땀을 내며 읽었으나 이뿐이는 다 읽은 뒤 그걸 받아서 피봉에 도로 넣고 그리고 나물 보구니 속에 감추고는 그대로 덤덤히 산을 내려온다. 산기슭으로 내리니 앞에 큰 내가 놓여 있고 골고루도 널려 박힌 험상궂은 웅퉁 바위 틈으로 물은 우람스레 부딪치며 콸콸 흘러내리매 정신이 다 아찔하여 이뿐이는 조심 스레 바위를 골라 디디며 이쪽으로 건너왔으나 아무리 생각하여도 같이 멀리 도망 가자는 도련님이 저 서울로 혼자만 삐쭉 달아난 것은 그 속이 알 수 없고 사나이 맘이 설사 변한다 하더라도 잣나무 밑에서 그다지 눈물까지 머금고 조르시던 그 도련님이 인제 와 싹도 없이 변하신다니 이야 신의 조화가 아니면 안 될 것이다. 이뿐이는 산처럼 잎이 퍼드러진 호양 나무 밑에 와 발을 멈추며 한 손으로 보구니의 편지를 꺼내어 행주치마 속에 감추어 들고 석숭이가 쓴 편지도 잘 찾아갈는지 미심도 하거니와 또한 도련님 앞으로 잘 간다 하면 이 걸 보고 도련님이 끔뻑하여 뛰어올 겐지 아닌지 그것조차 장담 못 할 일이건마는 아니, 오 신다 이 옷고름을 두고 가시던 도련님이거늘 설마 이 편지에도 안 오실 리 없으리라고 혼 자 서서 우기며 해가 기우는 먼 고개치를 바라보며 체부 오기를 기다린다. 체부가 잘 와야 사흘에 한 번밖에는 더 들르지 않는 줄을 저라고 모를 리 없고 그리고 어제 다녀갔으니 모 레나 오는 줄은 번연히 알련마는 그래도 이뿐이는 산길에 속는 사람같이, 저 산비탈로 꼬 불꼬불 돌아 나간 기나긴 산길에서 금시 체부가 보일 듯 보일 듯싶었는지, 해가 아주 넘어 가고 날이 어둡도록, 지루하게도 이렇게 속 달게 체부 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오늘은 웬일인지 어제와 같이 날도 맑고 산의 새들은 노래를 부르건만 이뿐이는 아 직도 나올 줄을 모른다.

출전:조선문단(1936.7)

편안한 읽기

오래된 문장, 새로운 발견.

설정과 읽던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됩니다.

이 작품의 원문

단편서가에 대하여

영상으로 새롭게 만날 이야기를 찾으며, 한국 단편 문학 260편을 모았습니다.

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마당의 만료저작물을 바탕으로 합니다. 원작의 표현과 옛말을 유지했으며, 읽기 화면에서는 줄바꿈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작품마다 원본 파일과 출처를 함께 제공합니다.

일부 작품의 세부 장르와 본문 정확성은 추가 대조 중입니다. 영상 제작과 해외 공개에 앞서 원문과 이용 범위를 확인해주세요.

책갈피와 읽기 기록은 기기 간 동기화되지 않습니다. 브라우저 데이터를 지우면 함께 삭제됩니다.